한국일보

내 인생은 나의 것-나를 위한 용서

2006-07-1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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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희(뉴욕가정상담소 카운셀러)

예전에 한국에서 유행했던 노래중에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그 당시 이 노래를 들었을 때는 부모에 대한 저항을 표현한 노래하고 생각했었는데, 요즈음들어, 상담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말을 전해주고 싶은 경우가 있다. 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 중에는 과거에 자신이 받은 상처에 묵여서 미움과 분노로 자신의 삶을 채우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에게 이러한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러나 용서하지 못한다면, 결국 치유는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상처를 받는다. 실망, 배척과 배신, 저버림, 놀림, 수모, 속임수 등이 그것이다. 우리의 행동을 잘 살펴보면, 자신이 받은 상처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아이를 키우는 방식을 살펴보아도 자신이 어릴적 부모로부터 받은 방식대로 하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할것이다. 폭력적인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가해자나 피해자가 되는 것은, 이 행동이 배워진 행동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도 모르게 몸에 배여있는 상처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아이였을 때는 자신의 방어 기제가 아직 발달하지 않았고 자아가 덜 성장한 상황에서, 아이들은 흔히 폭력 상황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면서 이해하려고 하며, 신체적 학대를 받은 아동은 자신을 천시하는 열등감을 갖게 되는 심리적 외상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 들 중에는 자신에게 이러한 상처를준 부모에 대하여 평생 분노를 갖고 인생을 살기도 한다. 이 들은 자신의 과거와 분리가 되지 않은채, 과거의 상처가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지배하는 상태에 놓여져 있다.


자신의 상처로부터 자유롭기 위하여는 과거에 자신에게 상처를 준 가해자를 용서해야한다. 용서하지 못하고 (아니 용서하고 싶어도 용서가 되지 않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마음에 이 상처와 분노를 담아두고 자신뿐 아니라 관계되는 사람들에게 해를 주게 되고, 결국 폭력의 고리는 세대를 통해 다시 이어진다.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이던, 다른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이던, 상처받은대로 반응하는 악순환을 끊는 것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가 자신에게 상처를 준 가해자를 용서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결국 자신의 삶을 위한 것이다. 용서를 하지 못한다면 결국 치유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Hurh & Kim 통계에 의하면, 한국인의 70%가 교회를 다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상담을 받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상처를 신앙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 들 중에는 신앙으로 “용서를 해야지,” “용서해야 한다”라고 말하지만, 어떻게 용서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용서는 단번에 완성되는 의지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의 과정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하기 힘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면서 용서의 과정을 거치게될 때 치유가 이루어질 수 있다. 여기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상담가와 함께 상담을 진행하거나,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하는 그룹 모임에 가는 것이 그 중의 하나이다. 자신이 받은 상처를 인정하고( 내 삶 속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지를 그대로 바라보고, 솔직하게 자신의 아픔을 인정하고, 분노가 일어나면, 그것을 인정하고),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 가운데 자신을 위로하여야 한다. 이 때 자신의 상처와 자신을 분리시켜야 한다. 그리고 나서 상처받은 자신을 제단에 예물로 바치면서, 기도하는 중에 용서가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가 가해자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중에 하느님은 상처를 입힌 사람들에 관하여 가르쳐 줄 것이다. “그들도 역시 하느님의 자녀요, 상처를 안고 있음”을 깨닫게 해줄 것이다. 용서는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용서가 이루어지면 잊어버리게 되는 부산물이다. 용서는 또한 내가 사면을 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오직 하느님만이 할 수 있다. 용서는 은연중에 이루어지고, 치유에 곁들여지는 부산물이다. 용서는 아주 자연스럽게 솔직한 가운데 이루어진다.

우리가 화가 날 때, 나의 안전이 위협이 되어서, 인정받고자 하는 갈망 때문인지, 이 상황을 통제하려는 욕구때문인지를 점검해 보면, 우리의 상처를 만날 수 있고 용서와 치유를 시작해 볼 수 있다. 그것은 좀 더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누리며 살겠다는 적극적 사랑의 행위이다. 켄 케이스가 말한 것처럼, “평화로운 사람은 평화로운 세계에서 살고, 분노하는 사람은 분노에 찬 세계를 창조한다…” 이것은 우리가 창조하는 주위환경이 우리를 가로 막을 수도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건강한 사람은 건강한 세계를 창조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고,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은 용서할 줄 아는 세계에서 살아간다. 우리가 용서를 시작하는 것은 가해자에 대한 분노와 보복에 쓰는 일을 그만 하겠다는 결단이며, 자신의 삶을 살겠다는 적극적인 자존심의 표시이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랑의 응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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