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백년하청(百年河淸)

2006-07-1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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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철(롱아일랜드)

춘추시대 약소국인 정(鄭)나라는 북쪽에 진(晋)나라, 남쪽에는 초(楚)나라 라는 강대국들이 기세를 떨치는 틈바구니에 끼어서 한시도 편안한 날이 없었다. 주(周)나라의 영왕(靈王)7년(BC 565년)의 일이었다.
정나라의 대신 자국(子國)과 자이(子耳)등이 초나라의 속국인 채(蔡)나라를 공격하고 채의 사마공(司馬公)을 포로로 잡아왔다. 채나라의 종주국인 초나라가 이를 묵과할 까닭이 없었다. 그 해 겨울 초나라의 영윤(令胤) 자양(子襄)이 군사를 몰아 정나라에 쳐들어온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이에 정나라의 육경(六卿)이라 불리는 지도자들은 부랴부랴 도성에 모여 이에 대한 구수회의를 열었는데 그들의 의견은 처음부터 두 가지로 갈라져 대립되었다.

한편에서는 항복하자는 의견이고 다른 편에서는 진나라의 구원을 기다리자는 의견으로 갑론을박이 계속되었다. 항복론을 대표한 자사(子駟)가 “우리가 여기 모여서 저마다 이론만 늘어놓고 있으면 백성들이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니 저들을 다스리기가 점점 어려워질 뿐이요. 그러니 이
번만은 초나라에 복종해서 우선 백성들의 고난을 면케 합시다. 그에 앞서 진나라가 공격해 온다면 진나라에 복종합시다. 한을 눅치고 정중히 대국을 기다리는 것이 힘없는 나라의 도리가 아니겠소?”그러자 마주 앉았던 자전(子展)이 진나라의 구원을 기다려야 한다는 측의 의견을 대표해서 반
론을 제기했다. “소국이 대국을 따르는 데도 신용을 얻지 못하면 언젠가는 필연 멸망하는 법이오. 우리 정나라와 진나라는 이미 5,6차에 걸친 교섭에 의해서 동맹을 맺어온 터인데 이제 그 신의를 저버린다고 하면 설사 초나라가 우리를 구해준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그렇게 되면 보나마나 진나라는 우리를 적대시하는 한편 초나라는 우리를 속국으로 삼으려 할 것입니다. 그러니 진나라의 원병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이렇듯 시비 양론은 그칠줄 모르다가 결국 항복을 주장하는 자사(子駟)의 열변과 “책임을 지겠노라”는 단호한 기백에 눌려 초나라와 화평을 맺기로 결정을 내렸다.이 이야기는 좌전(左傳)의 ‘襄公 八年’ 속에 실감있게 기록되어 있거니와 약소국의 쓰라린 사정과 그 옛날 <주먹이면 제일>이던 춘추전국시대에 큰 주먹들 틈에 끼어서 살아남기 위하여 바둥거리던 약소국들의 가련한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하청(河淸)을 기다린다”는 말은 앞에서 인용된 부분대로 하자면 진나라의 구원을 기다릴 수가 없다는 의미로 비유된 것이지만, 보통 <백년하청>이라 해서 죽도록 기다려 본댓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오늘날 한반도의 실정이 그 옛날 춘추시대를 방불케 하고 있다고 본다. 단일민족으로서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이이온 한반도가 주변 강대국들의 농간으로 말미암아 남북으로 두 동강이 난 채 철천지 원수시 하면서 살아온 지가 어언 반 세기가 넘었건만 ‘남북통일’이란 허울좋은 구
호일 뿐 요원하기만 한 상태에서 6자회담을 제아무리 계속한다 한들 ‘백년하청’이란 말인가!

쌀과 비료를 위시해서 북한이 달라는대로 눈치를 봐가며 퍼주기만 했는데 요즘에 와서는 미사일 발사로 국제법을 어겨가며 공갈과 협박의 으름짱을 놓고 있는데도 미친놈의 도발행위가 무서워서 그냥 좌시한다면 평화통일은 커녕 적화통일이 걱정된다. 과연 한반도의 평화통일은 ‘백년하청’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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