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붉은 악마의 최면술

2006-07-0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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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춘(Fairfield Trad.대표)

한국에서 소포로 보냈다는 붉은 티셔츠를 입고 나타난 아들 내외와 어느 골프대회에서 선물로 준 뉴욕판 ‘필승 코레아’ 티셔츠를 입고 온 가족이 한 방에 모여 한-불 축구전을 응원하며 관전하였다. 세상 어느 곳에서나 한인이 모여 살면 자연스레 이루어진 월드컵 축구 열기가 드
디어 우리의 안방에까지 밀려온 결과였다. 스포츠 중계를 혼자서 관전하는 것보다 몇 명이 모여서 보아야 분위기가 고조되고 그 열기를 주고 받는 분위기를 만들고자 친구끼리 모여서 보는 것이다.

16강 좌절로 붉은 악마의 집단 최면에서 이제 풀려날 때가 되었다. 한국의 온 거리가, 수많은 광장들이 온통 붉은 악마의 열광이었던 흥분의 태풍이 썰물처럼 밀려 나갔다. 온 세계에 퍼져 사는 한인들도 태풍을 맞고도 일어서서 비에 젖은 세간살이를 햇빛에 말리는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붉은 악마들이 토해내는 응원의 열기는 역사속으로 흘러간 갖가지 군중들의 함성과 대비(對比)된다.히틀러가 가는 곳마다 광장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열변을 토할 때 환호하는 독일 군중들, 전장으로 나가는 황국 병사가 천황에게 절하며 비장한 각오로 출전하는 자칭 대 일본제국 병사들의
함성, 장충체육관에서 99%의 득표를 얻게 되는 대통령 선출의 일사불란한 구호를 외치는 유신시대의 대한민국 국민들의 관선(官選) 외침, 미 대륙을 누비며 개최되는 민주 공화 양 당의 지도자 연설이 숨을 돌릴 적마다 울러펴지는 박수와 환호성이 터지는 아메리카 합중국 인들의 광
기(狂氣), 이 모두가 군중이 하나 되는 집단최면 현상이다.
이쯤 되면 개개인의 사소한 감정과 사고 능력은 군중심리에 동화되어 모든 근심 걱정이 순간에 사라진다.


독재정치 지도자가 국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하여 쓰는 스포츠 장려가 헛된 낭설은 아닌가 싶다.거기다가 날로 발달된 매스 미디어는 건조한 들판에 불붙는 불씨를 광풍처럼 불어부친다. 거기다 월드컵 중계료로 큰 돈을 만진 한국의 TV 지상파 3사는 세계 어느 나라 언론보다 많은 중
계를 하여 ‘균형 잡히지 않은 편향된 보도’라고 식자의 비난을 받고 있다. 언론매체의 극성스런 중계는 작은 국토의 국민들을 잠 설치게 하며 붉은악마의 응원 열기를 연출하였다.그렇게도 열렬한 응원에도 16강 진출에 실패한 한국의 응원단을 보며 누구나 안타까움을 안 가진 한인은 없었으리라.

경기에 탈락하였다고 눈물 흘리며 아쉬워하는 순진한 남한 여인들의 모습을 영상에서 보니 위대한 수령이 서거하였다고 자기 부모 죽은 것보다 더 서럽게 우는 북녘의 인민들 모습과 오버랩 된다.텅 빈 경기장이나 도심 한복판 광장에 수만명이 모여 대형 스크린을 통하여 관전하며 응원하는 행사는 한국이 원조라는 기사도 본 적이 있다. 선진국이 되어가니 벼라별 것도 앞장 서서 가고 있나 보다.먼 곳에서 기도하여도 응답이 있는 것처럼 현장에서 응원이 아니더라도 먼 곳에 하는 응원도 기도처럼 일맥상통하는 이유가 있으리라 수긍이 가기도 한다.

요즘같이 하루 하루가 불안한 현대인은 어떤 강력한 집단에 의하여 집단 최면에 걸리기 쉽다. 개인의 사소한 불만이 공동으로 뭉치면 폭동으로 변한다. 문명국으로 쳐주는 불란서의 지난번 취업난의 폭동이 이를 설명하여 준다.최면술도 좋은 방향으로 유도되면 질병 치료, 심리 치료에 원용된다.미국에 사는 소수민족으로서 권익을 찾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선거 때 투표에 참여하여 한 표를 행사하는 일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상식이다. 선거가 끝나고 보면 한인들의 너무나 초라한 투표 참여율 통계는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한인들이 많이 모여 거주하는 웬만
한 미국의 대도시에는 한국어 신문, 한국어 방송이 존재한다. 또 그들 나름대로 투표 참여 홍보를 하고 있다. 그렇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그 성과가 미미하기 그지 없다.

미주에 산재한 모든 언론기관 사주(社主)들이 붉은악마의 최면술에 걸려든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잠재의식에 투표 참여를 권고하는 의식(儀式)을 최면술처럼 불어넣어주는 프로그램을 짜 넣으라고 권하고 싶다. 11월 투표 한달 전부터 집중적으로 우리들의 의식(意識)에 투표의식
(儀式)을 불어넣어 주면 그 성과가 지대할 것을 확신한다.심리학적으로 한번 최면에 걸린 사람은 그 다음에도 최면에 잘 걸린다는 통계가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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