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상록농장 노인들께 바란다

2006-07-0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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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재(전 은행인)

참 대단한 노인들이다. 공권력을 앞세워 추호의 양보는 커녕 오히려 과잉 집행을 예사로 물의를 자주 일으키는 미국 경찰이 한인노인들, 특히 할머니들에게 네 손 다 들었다는 것은 경하해야 할 일인지, 경계해야 할 일인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복잡한 통행로에 좌판을 벌려놓고 채소를 판매하는 한인 할머니들과 이를 단속하는 경찰과의 숨바꼭질은 수년간 되풀이 하다가 경찰관들이 지쳐서 주위를 청결하게 하라는 조건 하에 묵시적으로 허용한 모양인데, 이보 전진을 위해 일보 후퇴한 듯 해서 오히려 불안한 것은 필자만의 기우일까.
이런 전례로 한인사회가 앞으로 사법기관과 마주쳤을 때 단지 한인이란 이유로 더 큰 불이익을 당한다면 소수의 극성스런 노인들로 인해 무고한 많은 한인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면 되로 받고 가마니째 빼앗기는, 그야말로 유탄에 맞아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상록농장이란 무료한 노인들 맑은 공기 마셔가며 화초, 야채 키우며 소일하도록 공원국에서 특히 한인노인들을 위해서 상록회를 통해 공원부지의 일부를 할량(割讓)해준 귀하고 고맙기 그지없는 노인들의 생활터전이다. 그런데 노인 1인당 한 필지를 경작할 수 있고, 경작한 농작물은 시중 판매가 절대 금지되어 있는데도 어떤 이들은 도둑질까지 해가며 위법하기가 일쑤요, 놀부 찜쪄 먹을 욕심 많은 노인은 혼자서 다섯 필지니, 열 필지니 차지해 초원에 무법자인가 하면, 어떤 할머니는 자기 경작지와 경계한 남의 땅을 자기 것인양 경작을 해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사례도 있다. 그러니 이런 늙은이들의 욕심을 공,맹자가 온들 무슨 수로 다스릴 수 있겠는가 말이다.

과거에는 수요자에 비해 많은 필지가 남아돌아 담당자들 임의로 원하는 이들에게 여유있게 분양했던 모양이다. 한국사람들 특유의 온정적인 품성으로 베풀고 그 답례로 술잔값이나 지불했을 법한 개연성이 짐작되지만 그것을 빌미로 등기권리증이나 소유한 듯 영구적으로 경작하려는 노인들은 자식들 민망스레 만들지 말고 손자들 교육을 위해서, 그리고 아직 분양받지 못한 노인들을 위해서 놀부 심보를 접어야 한다.

반면에 현 상록회 임직원들은 첫 단추를 잘못 꿰어 곤욕을 치룬 전임자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원리원칙에서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 행정을 가슴과 머리를 다해서 해야만 될 것이다.나이의 값이나 풍류의 멋과 맛을 아는 어느 노인들은 농장 안에 있는 큰 버드나무에 ‘청풍세류당(淸風細柳堂)’이란 현판까지 걸어놓고 바둑을 두고 계셨는데 말로만 들어왔던 신선이 무엇인지 몰랐어도 이런 노인들이 도끼자루 썩혀가면서 틈틈이 화초와 야채를 가꾸는 모습에서 신선이라는 추상적 인물의 현대적 개념을 읽을 수 있었다.남녀 불문, 유·무식 불구하고 노인의 나날을 살아온 나이값에서 노욕(老慾)이라는 형이하적(形而下的) 가중치(價重値)를 위해 단 한 페니라도 상쇄할 수 없음은 명예롭게 이승을 마감하려는 노인들에게 그것이 치욕의 표징이기 때문이다.

‘데레사’ 수녀는 “우리는 임종하는 순간 우리가 한 일의 양(量)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쏟은 사랑의 무게로 평가 받는다” 했다. 어떤 이가 받은 ‘노벨 평화상에 돈 거래’란 비아냥도, 뉴욕시내에 수억달러 어치의 빌딩들이 있다는 괴소문도 모두가 아둔하고 미련한 노욕이 임신해서 낳은 자녀일 뿐, 부끄럽고 연민스런 얘기다.
인간이 노욕을 버려야만 될 이유를 늙지도 않은 성삼문은 사형장에 끌려가면서도 천연덕스레 읊고 있다. “북소리 둥둥 사람 목숨을 재촉하고 머리를 돌려보니 해가 서산에 걸렸구나. 황천 가는 길엔 대폿집도 하나 없다는데(黃泉無一店) 오늘 밤엔 뉘 집에서 묵어갈꼬”욕심부려 모은 돈, 황천에다 뿌릴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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