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죽음을 기억하라(Momento Mori)

2006-07-0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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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진(맨하탄 파라다이스 클리너)

사람들이 같이 모여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대화의 양상을 보면 가장 무난하고 일반
적인 주제는 역시 날씨 이야기일 것이다. 그리고 요즘 경기가 좋다, 나쁘다에서 요즘이라면 ‘월드컵’ 축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조금 친하다면 건강이 좋으냐, 어떠냐 하는 정도로까지 이야기가 진척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인들이나 어떤 민족들도 대화중에 다음 세 가지 주제에 대하여는 애써 피해가려고 하는 것이 교양인의 표본처럼 되어버렸고 누구도 이 문제에는 될 수 있는 한 언급을 피하는 것이 예의처럼 되었다고 생각된다.

첫째, 종교문제가 아닐까? 지구상에 대강 1,000여가지의 종교가 있고 가장 신도가 많은 큰 종교들 중에도 교파들이 부지기수라서 감히 종교에 대하여는 정말 입을 다물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가지는 게 아닐까? 또 종교라면 무슨 사기집단으로 보는 그런 무신론자들도 정말 있어서 그들 앞에서 섣불리 종교 이야기를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누구나 자기가 믿는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믿는 마음을 누가 감히 건드릴 수가 있을까? 그게 더 진척되면 내가 믿는 종교만이 진리이고 너의 것은 별 것 없다는 논리로 비약되고 딴 종교를 욕해야 믿음이 좋은 듯이 보이기도 하고, 그래서 세상에 종교전쟁이 있었고 앞으로도 언제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둘째는, 정치문제라고 한다. ‘매스콤’의 단편적인 뉴스를 근거로 침을 튀기며 갑론을박하는 사람들이 유달리 한국사람들에게 많다고 하지만 결국은 시작도 없고 결론도 없는 그 이야기를 누구와 더불어 이야기한다는 것은 나로서도 정말 부담스러울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셋째는, 죽음에 대한 문제에는 모든 사람들, 모든 민족들이 금기인 양 어떤 형식으로든 피해가려고 한다. 죽음이라는 단어마저 꺼려해서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돌아갔다 카더라” 이 소식도 서로를 전하기 꺼리며 누구나 이 문제는 귀를 씻고 싶을 정도로 싫어하고 한국에서는 부고장이 오면 담벼락에 꽂아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가 하면, 할 수 없이 초상집에 다녀올 때면 대문 앞에서 뿌리는 소금을 맞고 집에 들어가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길을 가다 장의차를 보면 “오늘은 아마 재수가 좋은 날”이 될 것이라는 그런 ‘징크스’도 있다니 참으로 희한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 이 말은 라틴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시피 고어인 라틴말은 현재의 이탈리아어의 모체로서 로마제국 초기에 테베 강가의 부족들이 쓰던 말이 발전하여 서기 기원 전후에는 많은 인구가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많은 문학작품들이 라틴어로 쓰였다고 한다.초기 기독교 수도원에서는 수도사들이 서로 만나면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고 인사하면 ‘Hodie mihi, clas tibi(오늘은 나, 내일은 너)라고 화답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그들은 일순간도 우리들은 한정된 삶을 살고 누구나 어느 때인가는 죽는다는(Mortal) 것을 잊지 말자고 서로 다짐하는 의미의 인사가 아니었나 사료된다. 그러나 아마도 보통사람들에게 ‘죽음을 기억하라’고 말했다가는 재수없는 소리 한다고 따귀를 맞든지 ‘너나 많이 기억해랴’고 욕이나 먹기 십상일 것이라 생각된다.

2004년 8월에 타계한 사람으로 뉴욕의 맨하탄병원에 있던 죽음학의 대가이며 정신과 전문의였던 ‘엘리자베스 퀴불러’ 여사는 좋은 책을 20권 정도 남겼다. 그녀는 30여년 동안 임종 환자들을 돌보며 연구한 인물로 1968년에 발표된 죽음의 순간(On death and dying)이라는 책에서 죽어가는 수백명의 말기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임상연구를 통해 죽음의 과정이 5단계를 거쳐서 이루어진다는 이론을 발표했다.
1단계는 부정(Denial), 2단계는 분노(Anger), 3단계는 타협(Bargaining), 4단계는 깊은 우울(Depression), 5단계는 수용(Acceptance)단계이다.
그의 연구는 특히 말기 암 환자들이나 불치병 환자들이 평안한 마지막을 맞을 수 있도록 정신적이고 의료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데 크나큰 공헌을 하였으며 편안한 죽음을 도와주는 ‘호스피스’운동에 좋은 교육자료를 제공하였다고 한다.여사는 1999년 ‘타임’지가 선정한 21세기 100대 사상가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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