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6.25 그 날, 그리고 그 후...

2006-07-0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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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패튼(한미여성회 총연합회 회장)

1950년 한민족끼리의 전쟁으로 인해 그 후로 생긴 전쟁의 산물, 색깔이 다르고 낯설은 사람들이 한국을 도와주기 위해 미국에서 많은 군인들을 파견했다. 그럼으로 인해 국제결혼은 형성되고, 우리와 피부 색깔이 다른 혼혈아가 태어나게 된다.
6월25일 밤 몰아치는 폭풍우와 천둥소리는 나에게는 이렇게 들렸다. “어천아배 어천아배” 어머니 나라에서는 나를 천대하고 아버지 나라에서는 나를 배척하네” 혼혈아들이 태어나면서 우는 소리이다. 우르렁거리며 하늘은 수만가지로 빛을 쪼개고 분노에 찬 응어리를 토해내고 있었다. 56년 전 전쟁의 광음소리도 이랬을 것이다.

국제결혼으로 인하여 미국으로 남편을 따라 이민을 오게되고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과 다른사회에서 삶의 터전을 잡아야 했다. 고독과 외로움 속에서도 서로 의지하고 친목을 나누기 위해 국제결혼 여성들의 모임인 한미여성회를 조직하게 된다.그러나 우리는 친목의 성격에서 더 나아가 미주한인사회를 이루는데 많은 봉사를 하는 한편 40여년 동안 우리는 가족의 이민 정착을 도와가며, 미 주류사회와 징검다리 역활을 하며, 이민 100년의 역사 속에 진정한 봉사와 사랑의 참뜻을 심었다. 또한 우리가 구성하게 되는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에게 한인의 정체성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해 왔고, 미 주류사회에 한국 문화를 알리는데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국제결혼 여성들의 권익옹호와 혼혈인들의 차별금지를 위해, 기지촌 여성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한국인 속에 잠재되어 있는 인식을 전환시키고자 노력하며 우리의 목소리를 하나로, 우리의 희망을 하나로 우리의 열정은 타오르는 용광로 같이 식지않을 것이다.지난 주말 각 지역에서 모인 한미여성총연의 회원들은 그들의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미주 구석구석에서 한국을 알리는 홍보 대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실행하고 있었다.

30대부터 70대까지 우리는 국제결혼을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하나로 똘똘 뭉칠 수가 있었다. 우리에겐 무언가 통하는 것이 있었고 친언니, 동생같이 또는 엄마같이 그렇게 어우러져 6월 25일의 슬픔과 함께 따뜻한 정을 나누며 언제나 우리가 모든 사람이 평등한 세상에서 차별 받지 않고 살아갈 날이 오길 간절히 바랬다.
한인사회의 소외된 여성들을 위해, 갓 이민 온 가정을 이끄는 우리의 어머니를 위해, 차별과 멸시속에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살아온 혼혈인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그리고 이중의 문화 속에서 갈등하는 다문화 가정 여성들을 위해 우리는 언제나 든든한 동반자로 함께 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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