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의 님과 내 님의 차이

2006-07-0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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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오(우드사이드)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숨이 막힐 정도의 신선하고 가슴 찡한 충격이었다. 한국일보 26일자 B섹션 2면의 ‘워렌 버핏 아름다운 기부’ 제하의 기사를 읽고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버그셔 헤더웨이’ 회장 겸 CEO 워렌 버핏 회장이 자신의 재산 가운데 85~88%인 370억달러(한화 약 37조원) 상당의 주식을 내달부터 5개 자선단체에 기부키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다음날 동 지는 또 다시 그에 관한 기사를 실었는데 이번엔 제목하여 ‘상속세 유지하라’였다. 버핏 회장은 26일 맨하탄 공립도서관에서 가진 약정식과 기자회견에서 현 정권의 상속세 폐지만은 ‘혐오스럽다’며 부디 대물림에 반대하는 의미로서 상속세 존속을 적극 주장했다고
하는데 필자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아하! 이것이 미국의 저력이구나. 과연 선진국 국민답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옛 우리 속담이 떠올라 씁쓸한 고소를 지울 수가 없었다.


<남의 님 보다 내 님 보면 안 나던 울화가 치민다>는 속담이 필자를 더 한층 우울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남의 님’은 몇 백억달러씩 조건 없이 사회에 환원하는데 내 님(우리나라 CEO)은 어떤가?
단 한 푼의 상속세라도 덜 내려고 변칙 상속을 하질 않나, 세금마저도 덜 내려고 온갖 추한 행동을 다하질 않나,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주가 조작이나 중소기업의 목을 사정없이 비틀질 않나, 꼭 무슨 사건이 터진 후에야 선심쓰듯 이익금 일부를 조건 없이 사회에 환원한다며 생색을
내는 우리네 CEO들.

너무나 대조적인 남의 님과 내 님의 차이에 환멸마저 느껴진다.
왜 남의 님과 내 님의 차이는 이다지도 클까? 누구랄 것도 없이 우리의 CEO들은 하나같이 비자금 조성과 이익에만 몰두하고 있을 뿐, 이익금 사회 환원에는 인색하기 짝이 없다.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비교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 변칙 상속에 도가 튼 우리의 CEO와는 달리 버핏 회장은 “상속세는 공평한 세금”이라며 “왜 태어날 때부터 선택받은 몇몇 소수가 출발선에서 한참 앞서 달려 나가서는 안되며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며 기부 약정식에서 부시대통령에게 상속세 유지를 요구했
다니 이 얼마나 존경스럽고 장한 일인가!

아마 우리의 CEO들은 이런 버핏 회장이 무척이나 이상하게 보였을 것임에 틀림 없다.지금 미국은 이라크에서의 어마어마한 전비(戰費)와 해마다 늘어나는 경상수지 적자를 겪으면서도 미동도 하지 않는데 이러한 저력의 밑바탕에는 워렌 버핏이나 빌 게이츠 같은 훌륭한 CEO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러한 애국적이고 존경스런 CEO들이 있는 한 미국은 세계의 지도국으로서의 위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우리의 CEO들도 이들의 위업을 본받아 이들의 반의 반만이라도 따라가 주었으면 하고 바란다면 과욕일까?

사실 우리의 CEO들은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변칙 상속, 세금포탈, 뇌물공여, 비자금 조성, 자본 해외유출 등이 그것이다.
사족이지만, 우리 모두 알다시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자금 유입사건 때문에 난리들이다. 그는 물론 CEO 출신은 아니지만 일국의 최고통치자였던 만큼 비자금이 있으면 해외로 빼돌릴 것이 아니라 국가에 헌납해서 국고에 귀속시켜야 옳았다. 최고통치자가 이러니 여타 CEO들이야 말
해 무엇 하겠는가?

그러나 우리 한번 기대해 보자. 너무 큰 것을 기대하지 말고 평범하고 실현 가능한 것만 기대해 보자. 우리 님인 우리의 CEO 여러분! 위에 열거한 몇 가지 불미스런 일을 자제하고 밝고 명랑한 사회 구현을 위해 적당한 이익금 사회 환원에 인색하지 말고 후한 인심을 쓰는 후덕한 인물이 되
어 주었으면 한다. 다만 워렌 버핏 같이 무모한(?) 행동은 하지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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