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아름다운 부호

2006-06-2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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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한국에서의 일이다. 강연 차 온 미국의 한 재벌회장을 맞기 위해 공항에 나온 한국의 영접객들이 황당해 했던 일이 있다. 한국에서는 미국의 큰 손이 올 때는 분명 경호원들을 줄줄이 데리고 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런 귀빈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회장이 안 왔나 생각하고 있던 차, 바로 그 때 와이셔츠와 진 바지 차림의 어수룩한 한 미국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일반인이 타는 3등 칸 쪽에서…그러니 환영객들이 알아볼 리 만무였다. 그를 맞은 영접객들이 그 큰 손을 근사한 차에 VIP로 모시고 고급식당으로 안내하려 들자 그는 “식당이 뭐 필요하냐”며 햄버거 하나로 식사를 떼우더라는 것이다.

이 일화의 주인공이 바로 세계 최고 부호인 마이크로 소프트 회장 빌 게이츠다. 그런 정신의 소유자인 빌 게이츠는 하버드 법대를 들어갔으나 졸업은 하지 않았다. 대학 졸업보다는 하버드 학생을 오히려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대부(大富)는 재천(在天)’이라고, 그는 마이크로 소프트를 개발해 학교를 졸업하고 세상에 내놓기에는 늦을 거라고 판단했다. 지금도 누군가가 이와 비슷한 것을 만들 거라는 생각으로 그는 대학을 중퇴하고 만든 마이크로 소프트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것은 그의 특출한 아이디어와 역사를 내다보는 발 빠른 실천 의식의 결과였다.
그는 남보다 앞서는 자만이 역사를 사로잡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빌 게이츠는 컴퓨터 칩 하나로 젊은 나이에 세상의 많은 돈을 긁어모았고 지금도 이에 대한 대치상품을 또 개발해 세계의 모든 돈을 엄청나게 긁어모을 찬스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일선에서 물러나 자선단체인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활동에 주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조용한 용단을 결심하고 나선 것이다. 이를 두고 항간에서는 그가 일선에서만 물러났을 뿐, 완전히 손 떼는 건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우리는 그의 개인적 계획에 대해서는 이거든, 저거든,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본다. 단지 그가 특허 하나로 그렇게 세계의 돈을 엄청나게 긁어모았다는 사실이 생각할수록 놀라울 뿐이다. 또 특기할 것은 권력이나 무력이 아닌 컴퓨터 칩 하나로 세계를 통일하고 지배했다는 사실이다.
아프리카 오지에서부터 세계의 최강국 미국의 백악관에 이르기까지, 산이나 바다나,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인종과 지역, 사상, 그리고 종교를 초월해 하나같이 이 컴퓨터 칩 하나로 모든 것을 연결하고 모든 것을 해나가는 생활 속에 살고 있다. 그가 만든 컴
퓨터 칩은 그야말로 이 시대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불가결한 첨단기기로 세상을 크게 변화시켰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세계를 통일한 사람이 또 있었을까. 미국이 아무리 강국이고 징기스칸이 제아무리 세계를 정복했다 해도 빌 게이츠 만큼은 못했다. 그의 총재산은 지금 약 500억 달러이고 공식적으로는 482억 달러로 나와 있다. 특허 하나 가지고 이렇게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하는 것은 정말 기이한 사실이다. 그는 정말 하늘이 내린 사람일까, 그렇게 밖에는 달리 말할 수가 없는 인물이다.
그는 그렇게 많은 돈을 갖고 있지만 가족이 필요한 숫자의 차와 1년에 양복은 몇 번 안 걸치고 대부분 캐주얼 차림의 진바지와 셔츠, 나이키 같은 신발 등을 걸치는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가 할 줄 몰라서 그렇겠는가. 그는 자신이 젊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 것도 덧칠할 필요가 없던 것이었다. “젊음이란 건 무엇으로도 이길 수 있는 게 없다. 나는 바로 그 젊음을 가지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또 하나 “세상에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전 재산을 다 팔아 도움이 필요한 곳이 필요하지 않은 곳으로 변할 수만 있다면 내가 지금 전 재산을 다 내놓겠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적은 재산을 도움이 필요한 곳에 나누어 주고 싶다.” 이
것이 그의 뜻이다. 그는 별로 미남은 아니지만 정말 아름다운 얼굴을 가졌다. 그에게서 배워야할 점은 너무나 많다. 우리는 항상 배우면서 산다. 그런 면에서 빌 게이츠는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이 시대의 젊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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