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작은 행동과 말 한마디의 소중함

2006-06-2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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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민(퀸즈차일드가이던스센터 아시안 클리닉 정신상담 소셜워커)

며칠 전 한국에서 부쳐온 크리스천의 화물을 뉴욕으로 가져오기 위해서 멀리 펜실베니아를 다녀왔다. 먼 길을 오가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다가(사실은 나는 운전에 집중하느라 듣는 편이고, 주로 크리스천이 수다를 떠는 편이다) 아주 감동적인 교훈을 얻게 되었다.

크리스천은 주로 브로드웨이 뮤지컬 배우나 모델 들을 위한 ‘photography for entertainers’일을 오래 전부터 업으로 해오고 있다. 그래서 일과 관련해 이 계통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오고 있는데, 아주 특이한 젊은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이나 조울증 같은 정신질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부모나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신체적, 성적 혹은 언어적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가지 분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우선은 어린시절부터 학대나 방임을 경험한 사람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심리적인 어려움은 ‘사랑과 관심의 박탈’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부모나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정상적으로 받아야 할 것을 제대로 받지 못했거나 그 반대의 것을 경험함
으로 인해 성장한 이후 그 박탈을 보상하고 싶은 ‘심리적 방어기제’가 형성될 수 있다.


따라서 피상적이나마 사람들로부터의 관심과 사랑을 직접적으로 받을 수 있는 배우나 모델의 직업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는 바라던 것처럼 성공가도를 달리며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는커녕 오랜 동안 무명으로 어려운 삶을 이어가다보면 그동안 심리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열등감과 박탈감이 부정적으로 작용하여 정신질환이나 심리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사랑과 관심에 목말라있는 상태였다면 또 다른 박탈의 경험은 견디기 힘든 시련이 될 수밖에 없다. 크리스천은 그 중에서 아주 기억에 남는 한 여자모델에 대한 일화를 소개해 주었다. 당시 그녀는 주로 잡지나 상업전단지 광고에서 평범한 사람으로 등장하는 소위 ‘일반인 모델’로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그리 특출나지 않는 평범한 외모를 가진 여성이었다고 한다. 크리스천은 이 여자 모델의 프로필 사진을 찍은 후 아주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실제 보기에는 그리 예쁘지 않은 평범한 외모였는데, 사진을 찍어 현상해 놓고 보니 너무나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사진을 우편으로 발송한 며칠 후, 크리스천은 그녀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맨하탄 거리의 공중전화에서 걸었던 모양인데, 수화기 저편으로 들려오는 여성의 흐느끼는 울음소리에 뭘 잘못했나 싶어 큰 걱정을 했었다고 한다.

이 모델은 감격과 기쁨에 겨워 울고 있었다. 모델로 활동하면서도 자신은 평생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한 번도 예쁘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는데, 너무나 아름답게 나온 자신의 프로필 사진을 보고나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새롭게 발견했던 것이다. 며칠 후 크리스천은 그 여성으로부터 정성과 감사가 담긴 한 다발의 꽃다발을 받았고,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우연히 거리에서 멋진 남성과 두 명의 자녀와 함께 행복하게 길을 걸어가던 그 여자 모델을 발견했다고 한다.

물론, 그 사진 하나가 그 여자 모델의 무너진 자존감을 단번에 회복시켜 주고자신의 소중함을 새롭게 깨닫게 해주었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심리 상담을 해오면서 얻은 경험에 의하면, 그 사진은 분명히 그 여성의 자아회복에 큰 역할을 담당했을 것이라고 본다. 실제로, 내 클라이언트들 중에는 부모로부터의 받은 부정적인 말 한마디에 자아가 완전히 손상되고, 반대로 작은 사랑의 행동과 격려의 말 한마디에 우울증에서 완전히 회복된 경우도 있다. 우리가 매순간 살아가면서 하게 되는 말과 행동이 어떤 한 사람의 인생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가까운 가족과 주변사람들에게 함부로 말하고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소중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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