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굿모닝 게이샤(Good Morning Geisha)’

2006-06-2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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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자(의사)

짙푸른 바다를 가로지르는 선박(cruise) 안에서는 매일 음식의 축제가 벌어진다. 세계 각 나라의 잔치 음식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데 한국 음식은 끼어있지 않다.왜 한류의 열풍은 선박 안에까지 불어오지 않는 것일까?
그런데 월드컵 열기로 용광로처럼 닳아 오르는 뜨거운 여름의 한편에서는 한국음식을 소개하는 문화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지난 주 유엔본부 건물에서 이 6월 5일에서 6월 16일까지 열렸던 한국 음식축제에 다녀왔다. 세계 심장부인 맨하탄에 우뚝 서 있는 높은 유엔 건물 빌딩 앞에는 각 나라의 국가들이 바람에 펄럭이며 춤을 추고 있었다.

아래층 입구에서 긴 줄에 서서 검문 조사를 통과한 후 운전면허증을 후론트 데스크에 맡기고 나서야 4층 식당에 올라갈 수 있었다.
넓은 창으로 허드슨 강이 내려다보이는 식당의 각 테이블에는 손바닥만한 크기의 태극기와 유엔 국기가 함께 꽂혀있었다.유엔 식당 부페(Buffet)에 차려진 메뉴는 불고기. 산채나물, 전류, 원자, 편, 해물 죽 등 고유한 한식이었다. 후식으로는 밤톨 만하게 작게 빚은 떡과 다식, 수정과 식혜가 차려져 있었다.


어머니가 만든 진달래꽃을 얹은 찹쌀화전은 집에서 기른 꿀에 찍어 먹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뜨거운 수증기처럼 피어오른다.
식사가 시작이 되고 사람들은 음식을 접시에 담아 각자의 예약된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창가의 테이블에 앉아있는 두 사람은 아프리카 대사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고 옆의 테이불은 일본 관광사에서 일하는 남녀이다.
옆에서 접시에 부지런히 음식을 담고 있는 머리가 벗겨지고 배가 나온 나이 먹은 백인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소리를 큰 소리를 지르며 그의 이름을 부를 뻔하였다. 나의 기억 속에 각인된 남자와 너무 비슷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냥 비슷하게 생긴 남자일 뿐이다.

어느 날 아침인가. 직장에서 외국인 동료남자가 환하게 웃으며 내게 다가오며 말을 건넨다. “굿모닝 게이샤 (good morning Geisha)”
나는 그의 말을 잘못 알아들은 것 같아 그냥 넘겨버렸다. 그러나 왜 그런지 수치심으로 얼굴이 닳아 올랐다. 그러나 솔직히 ‘게이샤’ 라는 뜻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단지 기모노를 입고 백납같이 하얗게 칠한 얼굴에 그로 데스크 한 화장을 한 슬픈 운명의 일본 기녀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다음에도 나를 만날 때마다 그는 “굿모닝 게이샤” 라고 아침인사를 되풀이한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이라 그와 말다툼으로 기분을 망가뜨리고 싶지 않아 참았다. 아마도 그들은 동양 여자는 운명에 순응하며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피해자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언젠가 그를 다시 만나면 그의 뺨을 세차게 후려갈기고 싶었는데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그는 어디론가 바람과 같이 다른 곳으로 떠나갔다. 그 사람도 지금은 꽤 나이가 먹었으리라.

식사하는 동안 한국의 산골짜기에서 짙은 보랏빛 머루 열매를 따서 만든 머루술을 맛 보았는데 떫으면서 달착지근한 맛이다. 지금 그를 우연히 만난다면 머루술을 한잔 마시며 지나간 오해를 한 순간에 날려버릴 수가 있을 텐데 말이다. 타인 종들과 한국 전통음식을 같이 먹으며 마음을 털어놓는 일도 민간외교의 실마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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