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빵과 서커스

2006-06-2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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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올림픽이 각종 운동 기능을 견주는 것과는 달리, 월드컵은 축구 단일 경기의 각축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음을 보는데, 그 이유는 축구가 지니고 있는 재미이다. 넓은 경기장, 거기서 약동하는 건강한 체력,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경기 과정, 그러다가 골인
할 때의 쾌감 등은 선수들과 관객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하다.
자기도 모르게 축구경기에 몰입하다가 곁다리 즐거움까지 느끼게 된 것을 더 큰 수확으로 안다. 그 곳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아름다운 장면들이 눈에 띄었다. 선수들이 입장할 때 제각기 어린이와 손을 잡은 모습은 말없이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전에도 이런 장면을 본 일이 있지만
한층 아름답게 비쳤다. 각 국의 국가를 부를 때의 모습도 여러 가지였다. 선수들끼리 어깨동무를 하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어쩌다가 보여준 관중석의 어린이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자기 나라가 졌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넘어진 다른 편 선수를 일으켜주는 장면도 보았다. 경기를 하면서 승부를 가려야 하겠지만, 그 이전에 우리들은 인간이라고 말하는 장면들이다.보는 재미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은 선수들의 유니폼 디자인이다. 티셔츠에 반바지의 간단한 유니폼이지만, 각국의 특색을 나타내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색상과 무늬 등의 다양함은 경
기장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유자재로 약동하는 선수들을 한층 더 미화하고 있다.경기장에서는 오직 발과 머리만 있는 선수들의 팔과 손을 대신하는 것은 골키퍼 역할인 것이다. 선수들은 발과 헤딩으로 공의 방향과 속도를 조절하면서 공을 몰아간다. 그러다가 골인을 하면 천하일품의 볼거리가 된다. 관전 초기에는 선수들이 넘어지는 모습이 안타까웠으나, 곧 이것도 전술의 하나임을 깨닫게 한다.


경기장을 에워싸고 있는 세계 유수 기업 광고 중 한국 것이 눈에 띄며 반가워서 앉은 자세를 바로잡게 된다. 그 뒤에 공간이 있어 경호원들이 관객석을 바라보고 서 있다. 관객석 앞에 있는 간막이 디자인이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이다.경기 중 적지않은 선수들이 빨강이나 노랑 티켓을 받게 된다. 규칙 위반을 한 선수는 말할 듯 말듯 하다가 물러선다. 정보기계로 무장한 감시원들은 오판이 나지 않도록 정보 교환을 하면서 신속하게 판단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엄한 규칙 안에서 힘 겨루기가 이루어지고 있어 가일층 재미있다.

월드컵 참가국을 보면 낯선 나라이름들이 섞여 있다. 이것이 축구경기의 장점이라고 본다. 축구공과 넓은 마당과 골문만 있으면 어디서나 경기가 가능하다. 그래서 성장 중인 작은 나라에서도 선수를 보낼 수 있다. 월드컵 경기장 중앙 큰 동그라미 둘레에는 인종을 초월하여 친구를
사귀자는 뜻의 표어가 있다.월드컵 본선 진출 32개국 슬로건을 보면 이들은 경기 이전에 이미 투지를 불태우고 있다. ‘우리는 축구다’를 비롯하여 ‘국기는 나의 인생, 축구는 나의 열정, 월드컵은 나의 목표’ ‘승
리를 위한 열정과 갈증’ 등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들의 결의가 대단하다.
그러나 경기, 게임에 따르는 승부는 단지 그 때의 게임 결과에 불과하다.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게임에 열중했다는 사실이다. 경기 과정에서 선수와 응원단이 하나가 되어 정열을 쏟은 사실이 존귀하다. 이런 정열은 각 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주위 사람과의 유대를 강화하며, 소속 국가 민족에 대한 긍지를 가지게 한다. 먹고 사는 일도 아닌데 광기어린 행동으로 열중함이 어리석다고 판단할 것은 아니다.

죽기 살기로 열심히 경기에 참가하겠다고 할 때, 왜 이것 때문에 죽어야 하느냐는 질문이 나왔다는 것도 재미있다. 전쟁터에 나가는 결심으로 출전하였다는 아버지 세대와 하나의 게임에 참가하겠다는 자녀 세대와의 거리가 있다. 하지만 경기할 때 승패에 무관심할 수는 없지만 최선
을 다했다면 그것도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미국이 하품 하는 만화가 있고, 일반인이 흥미를 못 느끼고… 이런 와중에 미국 선수들이 성적을 올리지 못하였다. 이를 두고 축구 경기가 스코어를 올리기에 힘이 들고 성과의 숫자가 작은 것이 원인이라는 지적이 있다. 그럴 듯하다.하여튼 월드컵은 세계의 축제이고, 누군가가 ‘빵과 서커스’가 국가를 다스리는 기본이라고 말한 것을 실감한다. 월드컵도 빵과 함께 삶의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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