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2006-06-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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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재호(취재1부 기자)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한 고등학생이 있었다. 매일 머리를 쥐어짜며 공부에 열중하던 그는 어느날 갑자기 걷잡을 수 없는 좌절감에 빠져 들면서 자신의 공책에 ‘자살’을 연이어 쓰기 시작했다. 5분여간 쉬지 않고 ‘자살’을 써 내려가던 그는 공책 끄트머리에 도달했고 순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는 자리가 모자라 자살의 ‘살’자를 쓰지 못하고 끝내면서 ‘..살자살자살자살자’로 끝을 맺었기 때문. ‘자살’에서 ‘살자’로 변해버린 자신의 글을 보면서 그는 생각의 전환으로 극과 극을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공부에 열중, 결국 한국에서 유명한 성직자가 됐다.

위 이야기는 최근 감명 깊게 읽은 한 에세이의 내용이다. 에세이를 읽은 후 나 또한 어려움을 겪으면 힘든 상황이나마 좋은 점을 찾으려고 생각했고 대부분 큰 효과를 거두곤 했다. 그러나 극단적 어려움에 빠질 때는 당시 상황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인 듯하다. 최근 한인 사회에서 연이어 발생한 자살 사건을 볼 때 현실에 대한 두려움이 사람을 어디까지 내몰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을 새삼 떠오르게 한다.


최근 플러싱 고층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30대 중반의 남성. 젊다면 젊다은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극한 상황은 무엇이었을까? 경제적 어려움, 친구와 가족, 또는 이성친구와의 관계 등 그의 사망원인을 추측해보지만 뚜렷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또 베어마운틴에서 차량을 이용해 자살한 한 한인여성의 죽음도 각종 주류 언론에서 나름대로 원인분석을 하고 있지만 진실은 여성만이 알고 있으리라. 요즘 경기가 악화되면서 낭떠러지에 몰린 비즈니스맨들, 대학입시 또는 취업으로 인해 각종 스트레스를 받는 한인학생 등 삶에 지쳐 힘들어하는 한인들을 우리는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자살을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오늘의 역경을 이겨내면 내일의 태양이 더욱 빛나리라는 진실을 모두 믿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 몰라도...’처럼 힘든 날을 참고 견디면 웃을 날이 올 것이고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언젠가 지나가 버리고 지난 것은 또 그리움이 되곤 한다.


오늘은 일을 마친 후 거울을 보고 한번 웃자. 내일의 기반이 되는 오늘을 멋지게 마친 나를 칭찬하는 의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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