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픈 가슴으로 세상을 떠안는다

2006-06-1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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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민(퀸즈 차일드가이던스센터 아시안 클리닉 정신상담 소셜워커)

대학 다닐 때 나는 ‘부잣집 아들같이 생겼다’라는 이야기를 가끔 들었다. 아마도 어려움을 모르고 곱게 자란 티가 난다는, 조금은 칭찬 섞인 말이었던 것 같다. 사실은, 외모도 귀공자처럼 생기지도 않았고 내 실상도 부잣집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가 좀 잘 웃고 편안한 얼굴 색을 하고 다녀서 그렇게 오해했었던 모양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삶을 살아오면서 누구나 그렇겠지만 뒤돌아 보면 행복한 일도 어려운 일도 참 많았던 것 같다. 사실, 하나 하나 따져보면 쉬운 삶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약점 많은 삶을 시작해서 수많은 어려움의 질곡 속에 살아가야 했다. 그러면서 참 실수를 많이 했다. 다시 돌아가면 꼭 바꾸고 싶은 과거사가 한 둘이 아니다. 지금도 내가 가진 상처와 내가 가져다 준 상처로 가슴이 저려올 때가 있다.

요즈음 사람들에게 우스개 소리로 ‘삶을 정리하며 살고 있다’는 말을 하는데,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사실은 아주 오래 전부터 그런 생각을 해 왔다. 새파랗게 젊은 나이인 20대 초반부터 ‘삶을 마감하는 시점에서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까’를 진지하게 고민해 왔다. 어쩌면 ‘조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엄마 뱃속을 박차고 나온 순간부터 인생의 끝을 준비해야 하는 존재인 지도 모르겠다.아무 것도 알지 못하던 시골 촌뜨기였던 내가 세상에 대한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내 삶에 대한 목적을 어렴풋이 찾아가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내 삶의 주인인 그 분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시작하면서 조금씩 내 삶은 고민하는 인생이 되어갔다. 죽은 나무토막처럼 강물을 흘러 내려가는 삶이 아니라 작지만 생명력을 가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인생이길 소원하며 거친 길을 가고
자 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도 했다. 그것도 앞만 바라보면서 미친듯이 지식을 습득하고, 학벌을 쌓으며, 실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 부럽지 않은 학교도 졸업하고 미국에서 유학도 했고, 뉴욕에서 좋은 직장을 다니게 되었다. 이제는 어떤 일도 할 수 있는 힘을 기른 것같이 느껴졌다. 내가 생각했던 일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아이러니칼 하게도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은 종종 순수한 용기를 꺾는 방해꾼 혹은 몸을 불편스럽게 만드는 거추장스러운 악세사리 같이 느껴지곤 한다. 내 인생의 약점을 넘어서기 위해서, 그리고 목적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축적해 왔던 ‘외면의 힘’ 보다는 오히려 내 삶에 새겨진 수많은 흉터들, 본성적인 나약함과 후천적인 실수의 흔적들이 ‘내면의 힘’이 되어 아주 유용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내가 보듬어야 할 사람들, 내가 안고 가야할 세상은 나처럼 나약하고, 실수 투성이이고, 혼란스럽고, 가난하고, 병들고, 마음이 지쳐있고, 절망하기에 그 ‘내면의 힘’은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되고, 친구가 되고, 회복의 도구가 되는 모양이다.그렇다.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그리고 주변에게 조금은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정작 필요한 것은 그들을 이해할 아픈 가슴과 사랑으로 채워진 넓은 가슴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난, 먼 길을 돌아서 온 이제서야 그것을 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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