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대통령이 이럴 수 있나

2006-06-1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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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독일 월드컵에 출전한 한국팀이 첫번째 경기에서 승전보를 전해준 대 토고전은 전반전 때만 해도 1 대 0으로 한국팀이 진 경기였다. 토고가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 아프리카에서도 존재를 찾아보기가 어려운 조그만 나라이다. 그 나라가 월드컵 본선에 나온 것만도 기적이라고 할 만큼
약팀인데 한국이 토고에 한 점을 빼앗기고 무기력한 경기를 했다. 붉은악마의 응원이 무색케 되고 국내외의 전동포들이 낙담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후반전에 들어와 한국팀은 눈부신 활약으로 두 골을 넣어 사태를 역전시켰다. 결국 2 대 1의 스코어로 한국팀은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 무엇이 이처럼 결과를 달라지게 했을까.

전반전에서 한국팀의 실력이 나타나지 않자 아드보카트 감독은 후반전 전술을 바꾸었다. 선수들의 위치를 바꾸어 4·3·3 전법을 기본으로 삼고 수비 때는 4·5·1, 역습 때는 4·4·2 전법으로 변화시킨 것이 승인이라는 분석이다.축구 뿐 아니라 매사에서 방법이 나빠서 좋은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실패할 경우에는 방법을 바꾸는 도리밖에 없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이런 제품도 만들어 보고 저런 마케팅 수법도 써 본 결과 시장의 반응이 신통치 않으면 제품이나 마케팅을 바꾸어
야 한다. 이윤을 극대화한다는 것은 목적인데 이 목적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방법이라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와같은 논리는 정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정치의 목적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서 국리민복, 즉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정치에서 무슨 주의니 정책이니 하는 것들은 이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에 불과한 것이다. 목적을 최대한 달성
하기 위해서 방법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들이다.5.16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젊은 장교시절 여순 반란사건에 관련되었던 좌익성향이 짙은 사람이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지금보다 훨씬 컸던 때였으므로 아무리 쿠데타에 성공해도 좌익정권이 부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미국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 혁명공약 제 1항 “반공을 국시의 제 1의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
호에만 그친 반공체제를 재정비 강화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박정희의 사상이 모두 없어지지는 않았다. 그는 기성 질서를 혐오했고 부단히 타파하려고 시도했다. 구정치인은 구정치인이란 이유만으로 정계에서 추방시키려고 했다. 재벌은 부정축재 혐의로 모두 잡아들였다. 민정 이양을 위한 사전작업으로 추진됐던 공화당은 그 당시 진보
인사들의 입김이 작용한 사회주의 정당으로 출범할 태세였다.
그런데 이 모든 틀이 바뀌고 만 것이다. 민정으로 갈려고 해보니 사회주의 정당으로는 집권이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이름이 있는 구정치인을 모두 배제할 경우 다수 의석을 확보할 길이 없었다. 재벌을 모두 잡아 넣었더니 경제가 엉망이었다. 우선 사람이 살고부터 보아야 했다. 공화당
이 보수 정당으로 급선회하면서 재벌은 모두 풀어주었고 그 후 오히려 재벌을 비호하여 경제개발에 주력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한국이 세계의 경제대국이 된 것은 이와같은 박정희의 공로가 컸다는 데 이의를 가질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약 그 때 박정희가 자기의 사회주의적 신념을 관철하는 것만 고집했더라면 어떤 결과가 빚어졌을까. 남한도 북한과 마찬가지로 경제가 파탄된 빈곤독재국가의 길을 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떨치지 않을 수 없다. 정치가 국가의 이익, 국민의 행복을 증진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잘못된 방법이라면 고쳐야 하며 빨리 고칠수록 좋을 것이다.한국의 5.31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대참패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무현대통령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가 하면 국민들을 마치 개혁에 저항하는 세력으로 몰아부치고 “나는 내 길을 간다”고 오기를 부리고 있다. 버스에 탄 승객들이 모두 버스가 위험한 낭떨어지로 떨어진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도 핸들을 잡고있는 운전기사가 위기를 바로잡으려고 하지 않는 것과 흡사하다.

도대체 대통령이란 직책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국민들의 염원을 실현해 주어야 할 자리가 아닌가. 이렇게 열심히 해도 국민이 그게 아니라 저렇게 해달라면 그 방법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국민들의 눈치를 보지 않겠다는 대통령이 과연 필요한 존재일까. 이러한 기본인식이 결여된 노
대통령이 이 와중에서 자기는 혁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알듯 모를듯한 말을 했다. 과연 그는 지금 많은 사람들이 혁명을 해야 할 상황이라고 인식하지만 남은 임기 1년 반을 인내심 있게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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