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동포와 교포

2006-06-1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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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찬(취재2부 부장대우)

“이민 따위 생각 해본적도 없었고요.”
혼성 댄스그룹인 ‘거북이’가 부른 ‘빙고’라는 흥겨운 노래의 가사말 중 하나다. 노래는 신나고 좋은데, 이 가사 한 대목 때문에 왠지 씁쓸한 생각이 들곤 한다.가끔씩 한국 뉴스에 한국인들이 해외로 이민을 못가서 안달이 난 모습이 실리지만, 반대로 이민자를 안쓰럽게 여기는 분위기도 적지 않은 것 같다.

특히 미국 이민자에 대한 인식은 극과 극을 달린다.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똥포’, ‘미국 거지’ 등 저열한 표현도 적지 않다. 미주 한인들의 한국내 지위는 시대에 따라 다르다.유신시대였던 70년대에는 조국을 버린 배신자라는 분위기가 있었고, 80년대에는 반미 분위기
탓인지 미국 앞잡이라는 식의 곱지 않은 눈길을 받은 적도 있다. 한국의 과소비가 심했던 90년대에는 미주 한인들이 불쌍한(?) 사람으로 취급받았고, IMF 이후에는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한국이 IT 강국으로 떠오른 현재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약간 시대에 뒤쳐진 촌놈 취급받는 느
낌이 있다. 물론 이런저런 비판과 비난 속에 너희들은 교육환경 좋은 나라에서 마음 편하게 산다는 시샘도 상당히 많이 숨어있으니까, 괜한 한마디에 속상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언어 사용을 주업으로 하는 직종에 있다 보니까, 가끔 교포와 동포라는 무심코 사용하는 표현 한마디에 마음 한구석에 싸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정부기관 공무원이나 지상사 주재원, 유학생, 관광객 등 아직도 많은 한국인들은 동포 또는 미주 한인이라는 말보다는 교포라는 표현에 익숙하다.사전적으로 보면 교포는 핏줄이 같은 사람으로, 대체로 우리 국적을 갖고 다른 나라에 정착하여 살고 있는 사람들. 거주지를 기준으로 동포보다 좁은 의미로 쓰인다. 동포도 같은 핏줄을 이어받은 사람들. 같은 나라에 살거나 다른 나라에 살며 같은 민족 의식을 가진 사람 모두를 가리킨다. 외국에 거주하는 뜻을 가진 교포보다 포괄적 의미로 쓰인다.

그렇지만 교포의 교(僑)자가 ‘남의 집에 붙어서 사는 삶’이라는 뜻이 있어 한인사회에서는 동포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또 한국 정부에서도 교민보다는 재외동포라는 표현으로 통일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동안 미주 한인들도 소수민족으로서의 불리함과 차별을 적지 않게 겪으며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다. 미국에서 겪는 차별만으로도 힘들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같은 한국인으로부터 차별적인 표현을 듣게 되면 기분이 좋을 수만은 없다.언어 자체에 나쁜 의미가 없더라도, 불리는 사람들이 불편하게 느끼지 않도록 고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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