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열린 편지...희망의 편지

2006-06-07 (수)
크게 작게
홍재호(취재1부 기자)

한인 보건단체들이 매달 실시하는 무료 건강 검진 행사에는 한 가지 공통점을 찾아 볼 수 있다. 이는 많은 한인들의 참여 속에 성황리에 끝난다는 사실이다. 건강에 대한 한인들의 뜨거운 관심, 재정·언어적 문제도 원인으로 작용하겠지만 체류신분도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최근 한 무료 건강 검진 행사에서 만난 한인 노인이 “몸
이 아파도 체류신분이 밝혀져 추방당할까봐 병원에 가지 못하고 있다. 가끔 이렇게 열리는 무료 건강 검진이 나에겐 희소식”이라고 밝힌 것에서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체류신분 문제가 서류미비 한인들에게 병원을 기피하게 하고 병을 키우게 한다는 실례가 드러난 셈
이다.

그러나 최근 뉴욕시립병원들의 연합단체인 뉴욕시 건강&보건 연합(HHC)과 뉴욕시정부 산하 이민관리부가 서류미비자들의 병원 이용을 적극 장려하는 캠페인을 전개, 희소식이 되고 있다. ‘열린 편지’로 명명된 이 캠페인은 환자들의 신상정보 공개를 금하는 HHC의 정책과 서류미
비자에게도 권리를 존중하는 입장을 알려 서류미비자들의 공공병원 이용을 촉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HHC는 이를 위해 환자들과 직원, 이민자 그룹, 커뮤니티 단체들에게 성명서 ‘열린 편지’ 배포에 돌입했다.
또 3만6,000여명의 직원들에게는 서류미비자들의 신분과 권리에 대한 HHC 정책을 교육하는 세미나를 실시했다. 특히 알렌 D 아바일스 HHC 회장이 “HHC의 가장 큰 목표는 체류 신분에 상관없이 당신과 가족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것이다. 이민자들은 자신의 체류신분이 공개된다는
걱정 없이 자신과 가족들의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직접 말한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서류미비자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가끔 마음이 너무 저려온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캐나다 국경을 넘어 오면서 발각될까 두려워 떨었고 일류 대학을 졸업하고도 체류신분 때문에 좋은 직장을 갖지 못한 점, 비싼 병원비로 몇 달 동안 심하게 앓았던 경험까지, 눈물없이는 듣지 못할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이들을 보면 가슴이 아렸다.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미국에 왔지만 체류신분으로 인해 이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열린 편지’, 어떤 이들은 병원의 손해를 만회하려는 HHC측의 상술로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세상사를 너무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이를 통해 병원 방문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치료를 받기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열린 편지를 통해 또 다른 서류미비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개발될 수 있는 점도 부수적 수확일 것이다.
‘열린 편지’와 같은 프로그램이 계속 개발되고 실시되어야 서류 미비자들이 조금이라도 삶에 희망을 안고 살아가지 않을까. 서류미비자들이 안고 있는 한 가지 문제나마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희망의 편지’가 배달되길 기대해 본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