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풍수지리(風水地理)

2006-06-0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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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춘(페어필드 대표)

믿자하니 황당하고 안 믿자니 꺼림직한 일이 풍수설이다. 고국에 들릴 때마다 선산에 성묘를 하고 온다. 초등학교 유년시절 추석이면 그 때는 멋 모르고 아버지를 따라 고향 선산이 있는 시골의 이 산자락 저 산골짝 풀숲을 헤치며 6대조 할아버지 산소부터 증조부모 조부모 묘소를
성묘하며 70이 넘은 아버지가 마지막에는 조부모의 무덤 앞에서 절하고 꺼억꺼억 우시던 그 때 그 아버님의 모습이 반세기가 지나도 엊그제 일처럼 기억에 새롭다. 일제 말기 집안에 몰아쳤던 재난을 면하기 위하여 종중의 선산이 있음에도 유명하다는 지관(地官)의 말만 믿고 조부모
님의 유해를 이곳 저곳으로 이장을 하신 결과이다.
지금의 한국이 눈에 띄게 달라진 두 가지는 시골에도 고층아파트가 들어서 있고 또 하나는 매장지가 시골의 논밭 언저리까지 틈새만 있으면 구석구석 분묘 없는 곳이 없다는 사실이다.

유사이래 내려오는 매장 풍습이 이제는 온 국토를 뒤덮을 만큼 계속 늘어나고 있다. 나라법에는 엄연히 매장 및 묘지에 관한 규정이 1961년 법률 제 799호로 매장에 관한 법이 제정된 후 대도시 주변은 공원묘지 납골당이 있다고 하나 오래된 매장 습관으로 묘지 면적은 손바닥만한
국토를 해마다 잠식하고 있다.믿을 수도 없고 안 믿자니 찜찜한 풍수지리설 때문에 선대의 어른들은 조상의 유골을 칠성판에
짊어지고 그 명당을 찾아 방방곡곡을 헤매었다. 어찌 옛날의 선대 어른들만 그랬는가?근래에 들어와서도 DJ가 선친 묘를 이장하고 대통령이 되었다니 HC도 그의 선산을 옮겼으나 결국에는 실패한 사실이 엊그제 일이다. 국민을 지도하겠다는 대통령부터 이러할진대 소박한
일반 서민은 곤궁한 처지를 조상의 음덕을 빌어 금시발복(今時發福)으로 신세를 바꾸어보고 싶은 마음이 아니 들 수 없다.


때 권력을 잡거나 재벌급으로 부를 축적한 이들의 선산의 묘소는 가히 왕릉을 흉내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앞서 제정한 법을 위반하고 호화분묘를 썼다고 언론에서 폭로한 사실이 한 두건이 아니다. 하지만 그 후 그들의 분묘가 법 규정대로 고쳐졌다는 후속기사는 본 적
이 없다.어느 주간지에선 현 대통령의 선산이 대통령이 나올 명당이라고 치켜세운다. 어느 풍수가가 자기의 명성을 업그레이드 하려고 불어내는 나팔이렸다.과연 풍수지리설이 믿을만한 학설인가? 자연환경과 사람의 길흉화복을 연관지어 설명하는 학설로 주역에서 나온 음양오행(陰陽五行)이론이라 한다. 화장한 유해를 캡슐에 넣어 우주로 장사지내는 이 시대에 ‘못되면 조상탓’만 하고 명당 찾아 삼천리를 헤맬 일일까.
인간이 자연에 적응하면서 터득한 지혜로 집터는 양지바른 곳에 잡고 홍수나 재난을 피할 곳이 명당 집터이다. 풍수설에 따른 이론이 아니고 경험에서 나온 상식이다.

이씨조선 왕들의 능묘는 당대의 내노라하는 지관들이 최고의 명당을 잡았을 터인데 지기(地氣)가 다해서 왕조는 망하고 왕손들은 몰락하였는가? 부시대통령 일가가 명당 찾아 조상 묘를 잘 써서 부자(父子) 2대가 내리 대통령을 하고 있을까?
미주에 사는 우리들은 사후 명당자리 찾아다닐 걱정 없어 행복한 편이다. 좌 청룡, 우 백호, 전 주작. 후 현무 따지지 않고 규격에 맞는 비석을 세우고 옆자리 앞자리 가리지 않고 한 평도 못되는 공동묘지에 평등한 민주주의 이념대로 묻혀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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