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지도자 부재의 시대에...

2006-06-0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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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취재1부 차장)

얼마 전 취재했던 어느 한인단체의 총회 풍경. 차기 회장 선출이 예정된 이날 막상 총회가 시작되고 회장 후보 추천이 이어졌지만 분위기는 왠지 싸늘했다. 누군가 한 인물을 회장 후보로 추천한 뒤 한동안 어색한 침묵까지 흐르면서 아무도 현 회장의 연임을 제안하지 않는 배경이
문득 궁금해졌다.

회칙에서 회장의 연임을 허용하는 대다수 한인단체의 성격상 현 회장의 한 차례 연임을 총회에서 결의하는 것이 거의 관례처럼 여겨지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마저 느껴졌다. 물론, 아무리 회칙에 명시돼 있다하더라도 현 회장이 항상 연임되라는 법은 없지만
이날 분위기는 좀 유달랐다.
사회를 보던 회장은 또 다른 후보 추천은 없는지 거듭 되물으면서 얼굴이 점차 상기돼 갔고 회원들은 침묵했다. 이쯤에서 끝났으면 좋으련만 급기야 한 회원이 언짢은 어투로 현 회장이 그간 단체를 위해 기여한 바가 없어 연임을 제안할 수 없다는 발언을 했다. 공개망신을 당하다시
피한 회장은 회장대로 자신의 입장을 점잖게 밝혔지만 회장이 언성이라도 높였다면 자칫 큰 싸움으로 번질 수 있는 위험한 순간이었다.
결국 회장 후보를 추천했던 회원이 나머지 모든 임원 후보까지 줄줄이 단독으로 추천해 일사천리로 신임 회장단 선출이 마무리됐다. 현 회장은 총회 바로 직전까지 연임 의사를 밝혔다는 후문이다.


사실 이는 다양한 한인사회 단체나 기관에서 총회 때마다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회칙 개정을 하면서 토씨 하나 가지고 1시간 이상 논쟁을 벌이는가 하면 이미 짜놓은 각본대로 자신들이 원하는 차기 임원후보를 내정해 놓고 총회에서 절차만 밟거나 측근들끼리 서로 임원을 돌아가며 맡기도 한다.

또는 개인 사정으로 임원을 맡을 수 없다는 사람을 지나친 겸손으로 몰아세우며 굳이 회장으로 선출했다가 불과 몇 개월 뒤 임원진 총괄사퇴로 활동 마비 사태를 맞기도 한다. 이 경우 집행부 공백을 메우려고 급히 대체된 임원진은 남은 사업과제를 해결하느라 여러 힘겨운 상황을 맞
기 일쑤다. 반대로 진심으로 봉사하고자 하는 인물에 대해 때로 공연한 몰매질로 깎아내리는 경우도 없지 않다. 공연히 온갖 비난의 표적이 되기 싫어 아예 한인사회와는 담을 쌓고 산다는 사람도 더러
볼 수 있을 정도다.

한인사회의 미래 성장에 있어 진정한 지도자 부재는 당연히 걸림돌일 수밖에 없다. 새로운 차세대 지도자를 발굴하고 진심으로 한인사회를 위해 일할 일꾼을 세우기 원한다면 기본적인 총회에서부터 한인들의 임하는 자세가 보다 성숙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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