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혼돈의 시대’에 살면서

2006-05-3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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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정(회사원)

지금의 시대를 어떤 이는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했고 또 다른 이는 ‘공포의 시대’라고 했다. 만일 누가 나에게 다른 이름을 지으라면 ‘혼돈의 시대’라고 부르고 싶다.

문명이 채 발달되기 전의 단순사회에서는 ‘눈에는 눈(eye to eye)’이라는 법 하나만으로도 다스릴 수 있던 것이 과학이 선도한 문명의 발달과 함께 사회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전통적인 가치관이 흔들리고 계층간의 이해가 상충되면서 해결의 도마 위에 올려진 사안들의 결정이 단순 명료한 것만 있는 것이 아닌 것은 사실이다.
‘낙태문제’ ‘사형제도 존폐문제’ ‘회복불능의 식물인간의 생명 문제’ 그리고 ‘동성애에서 진화된 동성 결혼문제’ 등등은 문제를 보는 시각에 따라서, 또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서 다른 결정이 나오기 때문에 아직도 ‘미결제’함에서 잠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말하자면 ‘혼돈의 상태’에 빠져있는 것이다. 그런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불을 보듯이 분명한 사안인데도 혼돈하는 사례가 부쩍 늘어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지난 19일 ‘다빈치 코드’라는 영화가 전세계적으로 동시 개봉되어 첫 날의 입장 수입이 2억달러나 되는 흥행의 대성공을 했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영화 흥행 성공의 가장 큰 공로는 ‘신성 모독’이라면서 상영 저지를 기도했던 ‘바티칸 당국’이 아닌가 싶다.
모른 척하고 가만 있었으면 될 것을 공연히 물의를 일으켜 관심 없던 사람들까지도 호기심을 일으키게 해서 결과적으로 영화 관람을 권장한 격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세상이 다 알듯이 그 영화는 소설가 ‘댄 브라운’의 픽션소설 ‘다빈치 코드’를 영화한 것이다.문학 장르 중에 ‘픽션(fiction)’이란 것은 책 머리에 써놓진 않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내(작가)가 지어낸 얘기입니다” 라고 적어놓은 것과 똑같은 것이다. 소설이 주제가 나온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그림 또한 실물사진이 아닌 성경얘기를 바탕으로 상상해서 주후 1497년경에 완성된 100퍼센트 ‘상상화’이다. 그런 후 다시 500년 이상 지나서 한 영특한 소설가가 나타나 그 ‘상상화’에서 상상을 해서 쓴 ‘상상소설’이 ‘다빈치 코드’인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상상의 연속물이 시비거리가 되는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작가가 오직 신성을 모독하지 않는 쪽으로만 상상해야 된다면 개인들이 밤에 꿈도 신성한 것만 꾸어야 된다는 얘기인지?
시대가 그래서인지 한국도 혼돈스럽기는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다.
지난해 큰 화두였던 강정구 교수는 분명히 “6.25전쟁은 북한 수뇌부가 시도한 통일전쟁이었다”고 주장했었다. 전쟁은 크게 분류하면 합병된 상태에서 독립하려는 ‘독립전쟁’과 분리된 상태를 하나로 만들려는 ‘통일전쟁’의 두 가지 밖에 없다.
분리된 상태에 있는 한국에 전쟁이 나면 북침이었든, 남침이든 ‘통일전쟁’일 수 밖에 없는 것이 논리다. 그리고 ‘북한 수뇌부가 시도한’이란 수식어가 ‘남침’이었음을 분명히 해주고 있어서 그의 주장은 학술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완벽할 정도로 맞는 말을 했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념적 성향 때문에 선입견을 가지고 틀린 말이라고 공박하는 혼돈을 했었다.

그리고 그 때까지만 해도 고거 국가의 지도급 인사 수천명이 모여 좌경화 되어가는 정부를 성토했으나 약발이 듣지 않다가 강교수의 발언 이후 많은 수의 국민들이 ‘이건 아니구나’ 하고 움찔 놀라서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고 국가를 생각하며 우경화로 돌아서게 된 것은 꽤나 역설적이라 하겠다.또 하나의 화두였던 황우석 교수는 검찰수사 논리에 몰리자 자기는 줄기세포를 봐도 구분할 능력이 없다고 실토를 했다. 그런 사람이 세계적인 학술지에 발표는 물론 세계의 보도진들 앞에서 줄기세포를 만들었다고 발표를 했다. 단군 이래 가장 간이 큰 남자와 가장 유능하고 기대가
큰 과학자를 불교계 등 일부에서는 지금까지도 혼돈하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내가 혼돈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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