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부끄러움의 나의 어머니

2006-05-3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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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수필가)

오월이 되자 어버이날 기념행사로 각처에서 여러가지 아름다운 행사를 했다. 이제는 나도 그런 나이가 되어서 그런지 주기 보다 대접받는 입장에 놓이고 보니 나는 정말로 아이들에게 인자하고 훌륭한 어머니였던가 생각하게 되었다.
언젠가 아이들이 유치원,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심리 파악을 위한 설문조사인지 집안에서 일하시는 어머니와 화장을 곱게 하고 예쁘게 차려입은 어머니 중에 어느 어머니가 좋은가 동그라미를 치라고 했다. 그런데 반 전체 아이들이 몸을 예쁘게 단장하고 웃고 있는
어머니에게 동그라미를 쳤다고 한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 문득 옛날 고등학교 친구가 생각났다.

어느 초여름 멀쩡했던 날씨가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끼더니 오후부터 비가 그칠줄 모르고 쏟아졌다. 그러자 아이들은 앞으로 집에 갈 생각에 걱정들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내 옆자리 친구 이름을 부르며 누가 찾는다고 했다. 나는 무심히 친구 따라 복도로 나갔더니 친구와 얼굴이 비슷한 아주머니가 집에서 입던 허술한 옷차림에 앞치마까지 두르고 우산을 들고 있었다. 그러자 친구는 뭐에 화가 났는지 얼굴이 샐죽하더니 반가움에 뭔가 말하려는 아주머니를 본체도 않고 우산만 뺏어들고 가길래 누구냐고
물으니 일하는 아줌마라고 했다.


그 후 성인이 돼서 친구 결혼식에 가 보니 바로 그 분이 친구 어머니였다.그리고 보니 나 역시 학창시절에 내 어머니가 자랑스럽거나 존경스럽지가 않았다. 오히려 어머니는 세련되지도 않고 강하지 못하고 늘 골골 아프시기만 해서 우리 형제를 힘들게 했다. 왜 남들 엄마처럼 계를 해서 꿍쳐둔 돈이 없어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했을 때를 대비하지 않고 한참 공부할 나이에 고통을 주었나. 남들 엄마는 없는 재능도 만들어 주기 위해 노심초사인데 우리 형제는 여러가지 재주가 있는데도 뒷바라지 커녕 무관심에 오히려 못하게 말린 것 등등 구
구절절이 섭섭함이 많았다.

그렇다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흔히 부르는 어머니의 마음 같은 노래 가사가 모두의 어머님의 마음으로 기억에 남아있을까 싶었다. 오히려 그렇게 가사를 지은 분도 섭섭하고 부끄러웠던 어머니가 어느날 부모 입장이 되어서야 어머님의 사랑에 고마움을 느끼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그런 노래 가사를 만들지 않았는가 싶다. 아니, 나 역시 우리 아이들이 지금의 나를 어떻게 볼까 생각하니 부끄러움을 느겼던 것이다.

이민 와서 영어는 물론 미국 문화와 법도 모르면서 겁없이 생업에 뛰어들고는 이것 저것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는 부끄러운 부모가 되었다. 그 뿐인가, 한국인이 모이는 공공단체에서는 우아하게 차려입고는 집안은 엉망으로 만들지 않았는가.

아이들과 따뜻한 대화도 나누지 못하면서 남의 집 험담에 남의 아이들 흉까지 보는 ‘한국엄마들은 빅 마우스’라는 수다쟁이 소리는 듣지 않았는가. 아이들의 적성이나 재능에는 관심이 없고, 무조건 명문대학을 지망해야 된다고 닥달시킨 것은 아닌지...그러면서 밤낮 없이 죽어라 일한 것을 자식 탓으로 돌리며 눈에 보이지 않는 책임 전가를 하지는 않았는지...?이렇듯 시행 착오의 내 어머님은 그렇기 때문에 항상 염려스럽고 안심이 안되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어머니이자 바로 내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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