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숙제가 가장 중요한가요?

2006-05-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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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민경(뉴욕가정상담소 아동상담가)

뉴욕가정상담소 (소장 안선아) 호돌이 방과 후 프로그램 담당자로서, 아동 상담가로서, 주로 하는 일은 아이들의 감정과 생각을 인지하고 이해하며, 바람직한 방법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아이들 속에 잠재해 있는 힘과 기운은 종종 상상을 초월할 만큼 대단하다. 그 에너지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돌리는 일은 힘들고 조심스럽지만, 아이들의 감정이 안정되고 사고력이 향상되며 사회성이 발달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정말로 보람되다. 이런 생각과 목표를 가지고 프로그램을 담당하면서, 자녀를 향한 부모님들의 사랑과 희생을 지켜볼 때면, 행복한 한국 이민 가정을 위해 맡겨진 아이들을 돌보는데 최선을 다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때때로 자녀들을 향한 부모님들의 생각과 접근방법의 차이로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있다. ‘오늘 아이가 숙제를 못 끝냈네요. 숙제시간이 모자라나 봐요’ ‘숙제만 좀 꼼꼼히 확인해 주세요’ 종종 부모들로부터 이런 제안을 받곤 하다. 아동의 학업의 기본이 되는 숙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수업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진도를 따라가는 학생들의 자존감이 그렇지 못한 아동에 비해 높은 것이 사실이다.
하버드 대학 가족연구소는 자녀의 교육에 대한 부모님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아동의 학업 성취도가 비례한다는 연구조사를 발표했다.


즉, 아동이 배우는 과목(수학, 영어, 과학, 사회 등)에 대한 관심, 학교나 교육 단체에서 제공하는 여러 가지 워크샵과 회의 참석, 학교나 선생님과의 지속적인 대화, 방과 후 학교 교육, 학부모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성인교육 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노력하는 가정의 아동이 그렇지 못한 가정에 비해 학업성적과 대학진학률이 높다는 얘기이다.
따라서 자녀의 학업 과정에 관하여 부모들의 지속적이고 세심한 관심과 감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숙제검사’로 아이의 전반적인 상태를 성급하게 평가해서는 위험하다. 숙제를 끝냈고, 못 끝냈고의 결과에만 너무 집착하다 보면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을 간과하기 쉽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아이는 숙제 답안지를 몰래 구해다가 순식간에 숙제를 끝내기도 하고, 또 어떤 아이는 주위환경에서 받은 큰 충격이나 스트레스(학교에서 당하는 왕따나 부모님의 부부싸움) 등으로 인하여 학업에 집중하기 힘들어서, 얼마 안 되는 양의 숙제에도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숙제를 끝냈다는 대답에 그저 안심하기 보다는 질적으로 향상된 관심이 중요하며, 숙제를 못 끝낸 아이를 무조건 닦달하기 보다는 못 끝낸 이유를 먼저 살펴보고 적절히 조치하는 자세가 필요하겠다. 과정을 지속적으로 지켜보는 것 보다, 결과만을 확인하는 것이 훨씬 쉽고 간단한 일이지만, 자녀의 교육을 장기적인 과정으로 보고 그것에 맞추어 노력하는 것이 부모들의 수고를 값지게 하는 일이 아닐까 한다. 부모들은 자녀가 성인이 되었을 때의 모습을 그릴 수 있을까? 어떤 모습으로 커 주길 바라고 있을까? 건강하게, 총명하게, 친절하게, 풍요롭게, 책임감 있게, 예의 있게, 아름답게 혹은 멋있게, 밝게, 사려 깊게, 매력 있게, 선하게, 능력 있게, 행복하게....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과 그에 따른 기대와 바램은 끊임없이 열거할 수 있는 형용사처럼 넓고 크다. 하지만, 진정으로 자녀를 향한 올바른 인간상을 마음속에 지니고 있을까? 자녀가 골고루 성숙한 ‘전인격체’로 자라주길 바라지만, 이를 위해 구체적인 인간상을 세우고 교육하고 있는지는 정기적으로 점검해봐야 할 중요한 사항이다.

더 쉽게 접근하기 위해 질문을 던져보면, 쓰레기를 길거리에 거리낌 없이 버리는 아이의 행동과, 점수가 안 좋은 시험지를 들고 온 아이의 행동 중, 어떤 것이 더 속상하고, 어떤 것에 더 잔소리를 많이 하게 될까? 만약 두 번째의 행동에 훨씬 신경이 많이 쓰인다면, 이 아이는 어떤 모습으로 클 가능성이 있을까? 아이들은 스폰지처럼 부모님의 가치관과 이상형을 흡수하게 마련이다.

부모가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인간상에 따라 자녀의 가치관이 형성되며, 그 가치관은 아이의 일생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국에서 들려온 뉴스 중 적은 평수의 아파트에 산다는 이유로 급우를 왕따 시키는 아이들의 모습 속에는 경제 능력이나 재정 상태가 가치판단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 어른들의 가치관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부모들은 명확하고 이상적인 인간상을 마음속에 그리고 있어야 하며, 그에 따라 일관성 있게 자녀들을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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