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포구에서

2006-05-1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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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포구가 아니면 고기잡이 나가서 흔들리고 지치던 작은 고깃배가 등을 붙이고 쉴 수가 없고, 항구가 아니면 거친 대양을 헤쳐온 큰 배가 다음 항로를 가기 위해서 마음을 놓고 잠시도 잠들지 못한다. 바다는 역시 한마디로 고해라고 비유하는 인생살이와 같다. 넓기도 하고 맑아 보이도록
푸르기만 한 저 많은 물, 그러나 마실 수 없는 물일 뿐이다. 마실 수 있는 진정한 물이란 수원지에서 화학약품 등으로 처리한 물이 아니고 삽자루를 들고 땀 흘려 판 작은 샘물인 것이다.

꿈에 부풀어 있을 때에는 세상이 내 것 같기도 하고, 인생이 생각대로 이어질 것 같고, 결혼하는 사람은 솜사탕처럼 사랑이 달기만 할줄 알지만 가정을 이루고 나면 인생살이가 고해라는 것을 점점 깨닫게 된다.
인생이 어디 내 것인가? 인생길 가는 도구일 뿐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가정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가정을 지켜간다.그렇다. 가정이란 이루어놓기는 어렵지 않으나 가정을 가정답게 지켜 나가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가정은 묵묵히 지켜가는 자의 소유다. 가정에 대하여 무심하거나 지키지 않는 사람은 가정에 대한 소유권을 이미 잃어버린 사람이다. 가정은 작게 생각하면 포구이나 크게 생각하면 항구인 것이다. 가정이란 거친 바다 한 켠에 세워놓은 포구의 쉼터인 것이다.


인생살이의 어려움을 바다에 비유한 말은 불교에서나 기독교에서나 똑같다. 불교에서는 ‘인생은 고해;라고 직설하고, 기독교에서는 거친 파도를 눌러 밟고 걸어오시는 예수님과, 파도를 밟고 가다 물 속에 빠져버리는 베드로를 손을 잡아 구해내시는 예수님의 이끄심으로 인생살이의
어려움을 극복한다는 장면으로 은유하고 있다.
바다의 거친 파도는 인생살이와 같다. 또한 동양사상의 철인들은 인생살이를 도(道)라고 은유한다. 길 위애 내던져진 인생 또한 길일 뿐이다. 길은 내 것이 아니고 걸어가야 하는 곳이다.

길은 말이 없다. 길은 처음부터 닦여져 있지 않다. 방향을 잃지 않고 길을 내고, 가는 길에 감추어진 값진 내용을 발견하면서 제대로 가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인생살이 성공이냐 아니냐의 판가름이 나는 것이다.
그러나 길 내기가 그리 쉬운가? 제대로 된 길을 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경쟁과 더 많은 땀을 흘려야 된다. 그 힘든 길에서 누구나 지치고 쓰러지고 싶을 때 찾아가는 곳이 가정인 것이다.따스한 햇볕 아래에서 쉬고 있을 때 오이나 상추, 호박이나 깻잎은 열매의 꿈을 다듬는다. 따뜻
한 가정은 생산하는 농장과 같다. 생산하지 않는 가정은 관상수나 화분일 뿐, 남 보기에는 매끄럽고 화려하게 보이지만 냉랭한 그림일 뿐이다.

씨앗은 심는대로 똑같이 자라지 않는다. 좋은 수확을 바란다면 가꾸어야 한다. 가족관계에서 줄기가 있으면 줄기에 붙어있는 가지가 있고, 가지가 있으면 가지에 붙어있는 잎새가 있다. 부모로부터 공급받은 사랑의 가정교육으로 사회와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선심, 또한 그것을 본받아 되돌려주는 되돌림의 따스한 이웃 사랑, 이런 것이 모두 가정으로부터 생산되는 사회의 좋은 질서가 되고 사회가 바라는 내용인 것이다.

히늘이 있으면 땅이 있고, 물이 있으면 흙이 있다. 짐승이 있으면 사람도 있고 저주가 있으면 사랑도 있다. 불행이 있으면 행복도 있고, 전쟁이 있으면 화해도 있다. 이민생활에 가정경제가 어렵다고 부부가 불협화음을 만들기보다는 포구같은 가정에서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이
란 가지에 붙어 좋은 열매를 맺어야 되지 않겠는가? 좋은 열매가 좋은 술이 되어 세상을 좋은 것으로 취하게 할 수 있다.
십리를 가면 십리 만큼 도금이 되고, 백리를 가면 백리 만큼 도금이 된다. 인격에도 도금이 되고, 품성과 본성에도 도금이 된다. 가정을 잘 지키기 위해서 애를 쓴 사람은 황금색의 도금일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한 대로의 색깔로 도금이 될 것이다.

“너,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그대로 되리라” 법구경의 한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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