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헌법을 개정하든지

2006-05-1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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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일(취재1부 부장)

영국 BBC 방송은 지난 10일 주말레이시아 베트남 대사가 말레시아 정부에 한 21세 여성의 신원 파악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베트남 정부의 이같은 요청이 말레이시아에서 발행되는 중국어 신문 ‘광밍’(Guang Ming)이 문제의 베트남 여성이 말레시아 수도 쿠알라룸프 인근 곰박촌의 한 시장에서 경매에 부쳐져 60세 남성에게 5,000달러에 ‘신부’(Bride)로 팔렸다는 보도에 따른 것이다.

이 신문 기사를 인용한 AFP 통신은 당시 이 베트남 여성은 한 40대 남성에 의해 시장에서 경매에 부쳐졌고 4시간에 걸친 입찰 경쟁 끝에 팔렸으며 ‘신부’로서 판매됐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베트남 여성연합위원장은 말레시아측 여성연합위원회측에 “여성의 명예와 존엄성에 모욕적인 행위”라고 강력히 항의했고 이에 베트남 정부가 그 진위와 신원 및 소재지 파악을 위해 말레시아 정부에 공식 협조를 요청한 것이다.


이는 베트남 정부가 자국민이 해외에서 ‘인신매매’됐을 수 있고 또 이러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졌으니 자국민 보호는 물론이고 국가적 위신 차원에서라도 적극 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에서 가장 발행부수가 많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신문 중 하나로 꼽히는 ‘월스트릿 저널’은 지난 12일 북한인권법에 따라 처음으로 미국에 입국한 탈북 여성들의 증언을 통해 ‘너 같은 북한사람을 죽이는 것은 닭을 죽이는 것 보다 쉽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탈북자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상세히 소개했다.

이 글에 등장하는 ‘한나’는 수면제가 먹여진 후 중국 농부에게 2,500달러에 팔렸고 ‘나오미’는 중국 농부에게 넘겨져 노예처럼 생활한 사실이 폭로됐다.
그러나 이런 소식이 세계에 알려진지 4일이 지난 15일 현재 국내외 그 어느 언론에도 한국 정부가 중국정부와 북한정부, 심지어는 미국정부에 그 진위 파악을 위해 공식 협조를 요청했다는 보도는 찾아볼 수 없다.
한국 헌법이 북한내 북한인도, 탈북한 북한인도 모두 한국국민으로 정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한국 정부는 자국민 보호에 나서든지 헌법을 개정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한다.

특정 국가 출신 국민이 해외에서 받는 대우는 출신 국가 정부가 얼마만큼 적극적으로 자국민을 보호하느냐에 달려있다. 현재와 같은 태도라면 “한국 정부는 한국에 정착했거나 제3국을 떠돌아 다니는 탈북자들을 보호하기 보다는 김정일의 눈치를 보는데만 급급하다”는 일부 탈북자들
의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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