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무엇이든지 오르네

2006-05-15 (월)
크게 작게
김윤태(시인)

한 두가지를 빼놓고는 무엇이든지 오르는 쪽이 좋다. 군대에서는 계급 오르는 것이 좋고, 학교에서는 학년에 오르는 것이 은근한 기쁨이다. 나무는 하늘을 향해 높이 오를수록 거목이 되고 등산하는 사람은 산등을 타고 높이 오를수록 기쁨을 맛본다. 올라서 좋은 것이 한 두가지가 아
니지만, 물가의 숫자와 나이의 숫자는 오를수록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눈만 뜨면 물가가 오른다고 한숨짓던 한국의 서민생활의 어려움이 이제는 그 어두운 그림자가 미국땅에서도 자리를 넓혀간다.

눈만 뜨면 오르는 것은 휘발유 값, 부인은 없어도 자동차가 없으면 못 산다는 미국의 생활기초가 흔들린다. 휘발유 값이 갑자기 왜 올라야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이해가 되지 않는 정부의 궁핍한 변명과 설명만 그 때 그때 잠시 나올 뿐, 서민들은 먼지가 섞여나오도록 주머니돈을 털어 휘발유 넣기에 짜증만 난다.
출퇴근 길이 가깝기나 한가? 커서 좋고 광활해서 시원하던 이 큰 도시가 휘발유 값이 정신없이 오르면서부터 원망스러워 진다. 해마다 대학 등록금은 허리가 휘도록 오르고 올리지 않겠다던 선거 때의 공약은 다 잊었는지 해마다 몇 퍼센트씩 세금도 자꾸 오른다.


선진국이란 명함은 에너지와 세금이 만든다. 에너지를 많이 쓰는 나라일수록 선진국이 되고 세금을 많이 받아내는 나라일수록 선진국이 된다. 여기에 합당한 사람이라야 선진국의 국민으로서 당당할터인데 휘발유 값과 세금이 식생활까지도 위협할 지경에 이르렀으니 서민들은 선진국
국민증을 반납해야 될지, 아니면 아무런 이득 없이 떠들긴 해도 참는 데에는 이력이 난 대한민국 국민의 기질상 견뎌야 할지 분간하기가 쉽지 않다.
다행히 그래도 휘발유 값은 중동지역을 제외하고는 세계에서 미국이 제일 싸다고 하니 “아! 이 싼 휘발유 값이여!” 할 뿐, 경제사정은 알거나 말거나 껄껄거리며 휘발유 통속으로 들어가는 휘발유 소리를 들으면서 계속 올라가는 휘발유 값을 긴장하며 바라본다.

대체로 낙천주의자인 백인들의 얼굴에도 이제는 긴장과 걱정으로 불평하는 소리가 나온다. 이쯤 되면 미국의 경제는 반드시 흔들린다. 생산라인에서는 재고가 쌓이고, 유통에서는 상품이 상한다. 돌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가 어려우면 물가가 내려야 상식에 맞는데 오히려 반대다.
물가는 정책으로 확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인식으로 알게 모르게 정해진다. 사회가 불안하면 물가는 오르고 사회가 안정이면 물가는 내려간다. 운송비가 오르니 식품값도 세금 오르듯 야금야금 오른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시세말로 “좋은 시절 다 가고 겨울바람 불려나?” 긴장된다.

수입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이제는 지출에 대하여 걱정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적게 쓰고 적게 살아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힘들이고 애를 써서 이루어나가지 않는 생활이 어디 있겠는가? 힘들여서 쌓아가는 고난 속에 감추어진 보람과 기쁨과 행복이 뒤따라 온다는 것을 우리는 알기에 해가 뜨면 묵묵히 일터로 나가게 되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오는 가족을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이민가족 모두가 지금 어려움을 바라보며 만나면 서로서로 걱정을 나눈다. 물가는 올라도 그 모습이 오히려 따뜻하다. 먼 나라로 왜 왔을까? 가끔씩 찾아오는 이런 궁금증에 나는 대답을 한다. “참으려고 온 것이겠지” 그렇다. 물가가 계속 오르며 가정경제를 괴롭히는 자유시장 법칙도 참아내야 하고, 계속 오르는 휘발유 값도, 대학 등록금도, 세금도, 식품값도, 우표딱지 값도 참아내면서 아이들의 미래를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
오르기만 하는 물가를 구경하며 살아가는 가느다란 이민여행객, 그래도 이민 열차는 쉬지 않고 달릴 것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