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사상의 나라’

2006-05-15 (월)
크게 작게
허병렬(교육가)

로댕의 조각 ‘생각하는 사람’을 감상하고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작품의 우수함 보다는 그 주제에 더 끌리는 것 같다. 예술 작품은 아름다움과 함께 그것을 매체로 하여 펼쳐지는 상상의 세계도 즐거움을 준다. 그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이 의문은 어느덧 관람자를 광활한 상상
의 세계에 몰입하도록 끌어들인다.
사람은 생각한다. 큰 생각은 사상이라고 한다. 사상은 사고 작용의 결과로 얻어진 체계적 의식 내용을 일컫는다. 인류 역사가 길게 이어지는 동안 특출한 사상가들이 삶을 깊이 생각하는 길잡이가 되기도 하고, 정신세계의 흐름을 바꾸기도 하였다. 그들은 과학자들과 함께 정신적인 세
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의 경외(敬畏)의 대상이 되어온 것이다.

금년도 월드컵 축구대회가 독일에서 열리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 때까지 아직 시일이 남아있지만, 준비성을 갖춘 독일은 지금 당장 열어도 된다고 호언하고 있다. 이것은 준비 완료의 신호이다. 그들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한 것일까. 세계적인 규모로 열리는 행사를 보면 개최국의 개성을 역력히 알 수 있다. 개인의 개성이 있는 것처럼, 나라마다 뚜렷한 개성이 있음은 퍽 흥미롭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 몇 가지 조형물이 등장하였다는 소식을 뉴스 미디어가 전하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이 나라를 빛낸 문호·시인·사상가·학자 등 17명의 이름이 새겨진 책 17권을 쌓아올린 형태의 거대한 조각이라고 한다. 그 사진을 보면 크고 작고, 두껍고 얇은 책들이 한 줄로 높이 쌓여서 탑을 이루고 있다. 독일은 이번 월드컵을 국가 이미지 홍보를 위한 절호의 기회로 삼고 있다. 그들의 캐치프레이즈는 ‘독일-사상의 나라’이다. 독일의 품격에 머리 숙인다.


이 조각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은 괴테, 실러, 토마스 만, 헤르만 헷세, 하인리히 뷜, 컨터 그라스, 칸트, 헤걸, 마르크스, 루터, 래싱, 안나 제거스, 한나 아렌트, 그림 형제, 하이네, 베르틀트 부레히트,데오도어 폰디네 등이다. 굉장한 이름들이다. 이 중에서 몇 사람의 작품은 읽은 일이
있고, 동화 작가 그림 형제가 채택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이렇게 각 방면으로 우수한 인재를 배출한 나라는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그들의 의도는 앞에 거명한 사람들이 ‘어떻게 인간의 삶을 좀 더 편리하게, 안전하게 누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 왔는 지를 보여주자’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노력으로 ‘과학과 문화의 나라, 시인과 사상가와 창조적 열정과 현신제품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극대화하였다는 지적이 있다.

제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독일은 그동안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특히 유대인에 대한 죄상 때문에 계속 사과하면서 꾸준히 국력 회복을 이루었지만 동독과의 통일 후유증이 아직도 계속되는 현황이라고 본다. 그래도 국제적인 행사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면서 자존심을 되찾았다. 그 증거는 그들이 보여주는 ‘독일-사상의 나라’이다. 얼마나 멋진 캐치프레이즈이며 깊이가 있는가.
이렇게 나라의 지향점을 명시함은 국내외용이 된다고 본다. 안으로는 국민의 동의를 바탕으로 하여 동참을 이끌어내고, 밖으로는 이미지 제고의 방법이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길이 되기도 한다. ‘사상의 나라’라는 말은 주로 몸체가 이루는
기술도 아니고, 머리로만 생각해내는 얕은 지혜도 아니고, 마음과 머리가 하나로 묶여서 캐내는 삶의 근본 이유에 접근하는 바탕이라고 본다.

한국도 격조 높은 나라이고 싶다. 현재 각 방면으로 활발하게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차츰차츰 정리하면서 수준을 높여야 할 것 같다. 몽골에도 한류의 열기가 높은 가운데 그들이 지적하는 우리들의 부정적인 면에 대한 충고가 가슴을 찌른다. 경제력을 높이고 IT산업 세계 제 1위도 좋지만 ‘평준화 교육으로’ ‘해외 조기 유학’ ‘해외 입양아를 줄이자’ 등의 구호나 생각은 ‘사상의 나라’와는 거리가 멀다. 단기적이고 즉흥적인 것보다는 우리가 긍지와 희망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는 캐치프레이즈를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