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5월의 푸르름이여

2006-05-1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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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준 업 (필라델피아)

때때로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고 세상을 살아갈 때가 있다. 또한 내 이웃과 주위의 사람들도 매일 만나고 이야기 하면서도 진정으로 그들에게 나의 정을 나누며 밝은 표정으로 다가서는지. 그들이 어떤 처지에 놓여있으며 고통과 근심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기에 ‘사생활인데’ 하면서
그들을 피해 가곤 했다.

다른 사람들의 무례하고 경솔한 행동들을 보면서 내 삶도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지는 않았나 자신에 대해 반성도 한다. 이민생활에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따뜻한 인정, 위로가 흐르기 전에 배타적인 생각을 먼저 하게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것이 습성이 되어가는 듯한 인상도 갖게
된다.우리 한인사회를 되돌아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일들이다. 무슨 단체라고 하면 종종 쪼개지고 더 나아가 시시비를 가리자고 법원에까지 가는 추태도 있다. 오죽했으면 판사가 너희 민족들의 문제이니 가지고 가서 해결하라고 사건을 되돌려 보내겠는가. 작은 공동체 안에서도
그들이 나와 같을 수 없기에 내가 먼저 그들에게 따뜻함이 흘러야 하고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하여 안타깝게 생각할 때가 있다. 솔직한 고백이다. 내가 하는 낮은 목소리의 위로와 격려의 말이 초조하고 불안해 보이는 상대방에게는 다소나마 평온을 찾
고 긴장을 떨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느날, 울적한 심경으로 있는 나에게 아내가 냉수 한 컵을 주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힘을 내라고 조용히 건네는 말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도록 고맙게 느껴지는 것은 웬일인가! 평소의 그 많은 보살핌을 잊고 살아온 때문이리라.우리는 모두 미국이라는 거대한 이민의 나라에서 여러 민족들과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지나치게 나와의 주변 상황들에 비판과 연민에 빠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 삶이 그것을 피해
갈 수 없다 할지라도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무수한 가능성의 실현을 매일매일 보며 살고 있다. 이 땅에서의 생활에 많은 변화와 고통을 가져온다 할지라도 그것이 어떤 가능성의 실현이라는 목표를 위한 과정이라면 성취되었을 때의 기쁨의 경우처럼 역설적으로 즐거움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힘든 일에, 또는 신분 문제로 애초 가지고 온 꿈을 잃고 허탈감에 사로잡혀서, 사업의 부진, 자녀들의 장래문제 등등 아픔과 서러움이 각자의 처지는 다를 것이다. 그래도 무거운 일상의 삶 속에서 묵묵히 씨를 뿌리며 지혜의 바탕을 굳히고 살아야 된다고 본다. 이러한 자기 단련 없이
인생을 살아가는 일이 가능하겠는가!

하루 하루 인간으로 성숙해지며 한편으로는 보이지 않는 믿음 속에 어떤 가능성이 실현되고 있음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헤밍웨이는 1925년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글을 쓰면서 “세상이 무엇인가를 알려고 하기보다는 그 속에 어떻게 사느냐가 나의 관심사다”라고 적었다.
내가 나를 배려하고, 나에게 감사하며, 내 이웃에게도 고마움을 잊지 않으려 무리를 져서 더욱 더 푸르른 5월의 나뭇잎과 같이 우리들의 삶도 푸르게 푸르게 물들며 매일 살고 싶다. 지금도 향로봉 어느 계곡 바위 틈에는 초록색 잎들이 퍼지고 있을 것이다.쌀쌀한 아침, 햇살과 만나 하늘거리는 저 5월의 푸른 나뭇잎들이 우리를 축복하고 있는 듯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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