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아가는 지혜

2006-05-0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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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진(맨하탄 파라다이스클리너)

세상이 점점 기계화 되면서 사람과 직접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갈수록 적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장 보기도 인터넷에 접속만 하면 장을 다 보아주고, 하다못해 음식 배달에 옷가지는 물론, 은행일도 다 집에서 보게 되니 도대체 사람들과 접촉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
로를 기피하고 대화를 중단한 채 살아들 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미국에서 가장 처방이 많이 되는 약들이 ‘행복해지는 약’이란 별명이 붙은 ‘프로작’ 또는 ‘졸로푸트’라는 우울증에 쓰이는 약이라고 한다.
거기다 불안을 감소시켜 준다는 신경안정제, 밤에는 잘 자게 해주는 수면제 등이 가장 많은 처방약이라고 하니 우리는 가히 불안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만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의외로 정신과적 문제로 상담을 받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기도 하다.

서로 믿고 산다는 것은 이제 잘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로 우리는 서로 불신하고 간단한 것이라도 증서로 이중 삼중으로 서로 싸인을 해야만 안심을 하는 그런 세대에 살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또 그렇게 하면 할수록 그 사람이 똑똑한 사람으로 치부되는 것도 사실인 것이다.
그럼 우리들은 이대로 불안의 시대를 그냥 포기하며 살아가야만 하는가 하는 심각한 질문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여러가지 길은 있다고 본다. 전문적이고 상세한 것은 사회학자들의 연구 과제이겠지만 나는 나름대로의 불신의 시대를 살아가는 혼자만의 지혜 몇 가지를 갖고 살
아간다.


이것이 나에게만 해당이 되는 것인지 딴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는지는 차치하고 다만 참고로 했으면 하는 마음 뿐이다.본래 사회라는 것이 이중성을 갖고 있어서 우리는 친구와 그냥 좀 아는 사람을 잘 구분하기 힘
든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소수의 사람들과 깊은 교제를 나누고 싶어 한다. 서로 서로 이용가치가 있어 사귀는 그런 사람보다 나 이런 사람이요 하고 속옷 정도만 남기고 홀랑 벗어버리고 서로 마음을 탁 터놓고 지내는 아주 편한 관계를 나는 좋아한다. 그리고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을 좋아하며 “누가 그러는데 이렇다 하더라”라는 무허가 방송국 앵커들의 뉴스를 도대체 나는 듣기를 싫어한다. 그리고 별로 가까이 하고 싶지 않다.

긍정적이고 밝은 좋은 책을 읽고 싶다. 미국에서 만큼 도서관이 잘 되어 있고 좋은 책들이 많은 나라도 아마 지상에서는 없을 것 같다. 또 내가 미국에 살면서 가장 감사하는 것은 아름다운 공원이 많다는 것이다.마음 맞는 사람과 새 소리 들으며 잠깐만이라도 걸어본다면 불안은 저 멀리 도망가고 나는 희열에 넘친다.우리들은 가끔 희한한 영어(?)로 “저 사람 또라이야” “또라이 같은 소리 하네”라는 이상한 말을 듣곤 한다. 자기는 아무 문제도 없고 정상인데 저 사람은 살짝 갔다는, 그런 남을 비판만 하는 사람은 아마 누구라도 별로 가까이 하고 싶은 생각이 없을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今只他事 後只自事’라는 말을 많이 썼다고 한다. “오늘의 남의 일은 내일의 나의 일이다”라는 뜻으로 지금 남을 보면서 배우고 자기의 앞을 내다보는 그런 지혜가 담긴 말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소수의 사람들과 읽은 책의 환담을 나누며 “누가 죽으며 ‘시신 기증’을 하고 갔는데 두 사람이 눈을 떴다는군” “글쎄말이야 여자 친구에게 신장 한쪽과 췌장을 떼어주는 그런 진실한 사랑도 있다는군” 등 듣기만 해도 20세기 마지막 로맨티스트나 된 듯한 이야기를 해주는
그런 사람들과 차를 마시며 공원을 걷고 싶다.

아무리 불신의 시대에 살벌한 세상에 산다고 해도 그래도 세상은 살만 하고 이곳 저곳에서 따뜻함이 묻어나오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으리라 나는 믿고 있다.
그리고 따뜻한 가족의 사랑과 신의를 갖고 살아가며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남을 배려하는 작은 정성들이 모인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불안한 시대를 그나마 조금이라도 기쁘게 살아가는 작은 지혜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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