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장경제의 한계성

2006-05-0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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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인호(캐나다 연방정부 국제무역위원회 수석연구위원/경제학자)

2006년 새해 초 국내에서는 소득 양극화 현상과 그 해법에 관한 논란이 최대의 화두로 떠올랐다. 빈부간에 소득 격차가 더 커지고 중산층이 붕괴되고 있다는 현실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회 안전망을 확충시키면 소득양극화를 해소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논객들도 있다. 그들의 주장이 옳다면 미국과 캐나다는 사회안전망이 한국보다는 훨씬 발달되어 있지만 소득계층간의 불평등이 한국보다 더 불평등한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소득양극화의 발생 원인은 글로벌시대의 국제시장 현실(중국이 국제시장의 인플레를 억제시키고 있으며 그에 따라 이자율과 임금성장률을 꼭 잡아놓고 있는 현실)과 소득계층 구성원들의 임금 및 투자 소득상승률의 격차에서 발생되는 것이지, 사회안전망이 없어서 발생된 현상이 아
니므로 사회안전망 자체가 양극화를 해소시켜 줄 수 없다. 그러나 사회안전망이 사회의 약자들의 고통을 어느 정도 감소시켜 주고 그들이 다시 정상적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재정지원을 해주는 제도적인 장치이므로 꼭 필요한 제도인 것이다.
미국의 경제정책은 전통적인 재정 및 금융정책(정부의 재정 지출과 이자율 등을 적절히 조정하여 경기변동에 대응)을 이용하여 경제 전반에 걸쳐 활발한 경제성장을 도모하고 있는 반면, 조세정책(소득세는 누진율을 적용)에 의하여 소득 재분배의 메카니즘을 자동장치로 설치해 놓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경제성장률이 높으면 높을수록 소득이 증가하고 세금을 더 많이 걷게되며 시장의 경제 과열현상을 막아주고 동시에 사회안전망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해주는 자동 안정장치인 것이다.


성장이냐? 분배냐? 그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경제성장을 통하여 얻어진 과실을 조세정책을 통하여 저소득층으로 자동적으로 재분배 시켜주는 제도적인 장치가 사회안전망인 것이다. 기업의 구조조정과는 보완적인 관계에 있고 고령자들과 정신적/신체적 장애자들에게는 기초
생활을 보장해 주는 제도이므로 사회학자들이 말하는 ‘필요분배원칙’을 제도적으로 충족시켜주고 있다.

분배의 정의에 깔려있는 3대 원칙(평등, 성과, 필요분배 원칙) 중에서 성과 분배원칙은 시장에서 생산활동에 참여한 생산요소의 성과에 따라 보상해 주고(경제학에서 말하는 한계생산성에 입각한 공평한 분배원칙), 시장에서 소외된 계층은 필요분배원칙이 적용되며 사회안정망을 통한
재분배정책에 의하여 그들도 최저생활을 보장받는 것이다.
최근 한국에 발생된 고용불안, 청년실업문제, 고령자들의 생활 불안 등은 사회안전망이 부실하여 발생된 것이 아니고 사회안정망이 약하기 때문에 그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경제성장의 저조와 투자 부진의 상태 하에서 구조조정에서 밀려난 조기 퇴직자와 실업자들을 흡수할 만큼 고용창출을 못하여 사회불안 요소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소득양극화와 사회안전망 확충에 관한 논쟁은 정책적으로 무엇을 시사하는가? 첫째, 한국도 선진 복지국가들처럼 경제성장과 소득재분배를 동시에 만족시켜줄 수 있는 자동안정장치(누진율을 적용하는 소득세 제도)를 채택할 때가 됐다고 사료된다. 분배의 정의에 깔려있는 3대 원칙
중 필요분배원칙을 전면 무시할 수 없다. 둘째, 사회안전망이 계층간의 소득 격차를 줄여줄 수는 없다. 꼭 필요한 사회정책인 것이다.
미국은 한국보다 소득분배의 불평등이 약 2배 정도 크다. 또 사회안전망도 발달되어 있으나 빈부의 소득 격차는 어쩔 수 없이 발생되는 시장경제의 한계성이라는 것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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