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운 한국인

2006-05-0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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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불법으로 골프 교습을 하다가 적발되어 훈계를 받는 일 쯤이야 모르고 한 일이면 있을 법도 한 일이고, 알고나서 하지 않으면 용서가 된다. 그런데 한국인의 불법 수위가 그게 아니다. 하지 말라고 해도 주위의 눈치를 슬슬 보아가며 계속 법이나 규칙을 어긴다. 그리고 그것이 무슨 용맹이나 되는 것처럼 자랑스러워 하면서 낄낄대고 웃는다.
골프가 무슨 죄 있나, 잘못 치면 치는 사람이 죄지. 왜 유독 한글로만 된 경고문이 붙어 있느냐고 항의를 해보면 한국인은 영어를 잘 모르기 때문이라는 미국식의 궁한 대답이다. 과연 그럴까?

태국의 방콕 여행을 해 보면 미운 한국인이 얼마나 많기에 유독 한글로 된 경고문이 가는 곳마다 세워져 있다. <층계를 올라가지 마십시오> <만지지 마십시오> <파인애플을 따지 마십시오> 세계 공통언어인 영어로 된 경고문이나 그 흔한 일본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일본어의 경고문도 없다. 중국어로 된 경고문도 없고 저희들, 자국어인 태국어로 된 경고문도 없다. 한글로 된 경고문만 훼어패스 카운티 옥틴에 위치한 Oak Marr 레크레이션 센터 내의 골프연습장에 세워진 한글 경고문처럼 서 있다.


미운 한국인! 평범하다는 것이 무슨 죄처럼 꼭 티를 내려는 미운 한국인! 법이나 관례를 어기는 것이 주위에다 보여줄 무슨 자랑이라고 아는지 일부러 으스대며 오기를 부리는 미운 한국인!
조용하게 말을 해도 다 알아듣는 자리에서 큰소리로 떠드는 미운 한국인! 줄을 서서 기다리는 대열에서 앞사람 등 밑에 자기 배를 문질러가면서 슬금슬금 밀어대는 미운 한국인! 상점 유리창에는 “소주 팝니다” “화투 있습니다” 식당 입구에는 “소주를 가지고 들어오지 마십시오” 등등 미운 한국사람을 겨냥하여 훈계하는 경고문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관광일정 가운데 태국의 국보인 새벽사원이란 화려한 사찰을 가 보라! 출입금지용으로 철띠를 세워 놓았는데도 철띠를 넘어 계단 위로 올라가 사진을 찍는다. 그렇게 해서 사진 한장 찍으면 뭐가 좀 나은가? 그놈의 사진 한장 때문에 태국의 라마왕조 국보가 한국인 관광객만 보면 긴장
을 하고 손상의 위험 때문에 떨고 있다. 그러니 <제발 계단 위로 올라가지 마십시오!>란 경고문이 아주 사정쪼다. 그놈의 돈이 뭔지 한국 관광객이 뿌리고 가는 액수가 만만치 않으니 경고문이 아주 사정쪼다.

관광지에서 관광거리 아닌 별난 관광 상품으로써 태국인들 앞에, 아니 전세계에서 오는 관광객들 앞에 한국인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어느 공연을 보아도 한국 유행가가 몇 곡은 지정순서로 나온다. 한국노래를 배워 부르면서도 무대 위에서 돈을 뿌리는 한국인을 바라보는 눈매가 부러
워하는 눈치가 아니다. 오히려 경멸하는 눈초리다. 60년대 일본인을 상대로 한 한국관과 똑같다. 나라가 잘 살게 된 것은 고맙지만 파렴치 소리나 듣고, 불법행위자 취급을 받는다면 잘 산다는 것이 위세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부끄러움이다.
우리는 수많은 일본관광객이 다녀갔어도 일본어로 경고문을 써놓아야 할만한 일본인들의 무례한 행동과 위법행위는 보지 못했다. 정부에서 눈감아주던 기생관광을 빼놓고는...
파타야 가는 길, 돈 좀 벌어보겠다고 개인이 일구어놓은 거대한 파인애플 농장 입구에도 한글로만 된 경고문을 아주 사정하듯 써 세워놓았다. <제발 파인애플 좀 따지 마십시오>

자! 우리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해야 할까? 내 것이 중요하면 남의 것도 중요한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나에게 무례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남에게도 무례하면 안되지 않을까? 내 집이 깨끗해서 좋다면 남의 집도 더럽히지 말아야 되지 않을까? 인도의 시인 타골이 살아서 다시 한국을
본다면 조용한 아침의 나라가 아니라 ‘시끄럽고 무례한 독불장군의 나라’라고 말을 할까 두렵다.
변산반도로 이어지는 바짝 마른 전라도 시골길에 얼굴을 찌푸리고 서 있는 간판들 <감속하시오!> 조금 더 가보면 <제발 좀 감속하시오!>.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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