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한숨만 나오는 통일부장관의 인식

2006-04-2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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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일(취재1부 부장)

“전쟁시기와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
한국과 북한이 지난 24일 평양 고려호텔에서 장관급회담을 갖고 북으로 납치된 사람들과 6.25 전쟁당시 북한에 붙잡혀간 국군 포로들을 이같이 표현키로 합의했다.

이와 관련 한국측 대표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지난 27일 한국의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 “협상을 하는 데는 항상 상대가 있는 것 아니냐. 또 이 문제는 인도주의적으로 정말 고통을 받고 있는 분들에게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시켜주고, 만나게 해주고, 이런 것들이 중요하기 때문에, 상
대방이 열쇠를 갖고 있다”며 “양측 사이에 용어를 조절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다만, 우리 사회가 부르고 있는 것은 다른 차원”이라고 해명했다.그는 또 이같은 표현이 납북자와 국군 포로의 근본적인 문제를 훼손시킬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그 용어는 납북자나 국군포로를 포괄할 수 있는 개념이다. 그것이 왜 훼손한다고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물론 ‘전쟁시기와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 중에는 당연히 현재 북한에 생존해 있는 납북자들과 국군 포로가 포함되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장관이 크게 착각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북측과 협의한 표현은 북측의 범법 행위를 지적하지 않기 때문에 납북자와 국
군 포로의 근본적인 문제를 훼손시킨다는 사실이다.
납치 행위는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빼앗은 행위로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법으로 다스리는 인권 범죄이다. 6.25당시 북한에 잡힌 국군포로들은 1953년 정전협정에 따라 모두 한국으로 보내졌어야 함에도 그들을 아직 북한에 억류해 놓은 것 역시 납치 행위다.

북한의 이같은 범죄 행위는 43년간 북한에 갇혀있다 귀순한 국군 포로 조창호씨와 고기잡이에 나섰다 북한에 끌려가 30여년 세월을 빼앗긴 뒤 한국으로 돌아온 이재근, 김병도, 진정팔, 고명섭씨 등 귀환납북자 4명이 산증인들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한국은 북한측의 입장을 받아들였다. 이는 외교담판으로 볼 수도 없고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은커녕 486명의 납북자들과 600여명의 국군포로들은 물론 한국에서 그들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을 조롱하고 무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장관의 이같은 착각과 그 착각을 반영하는 한국 정부의 정책이 바로 지난 27일 미 연방하원이 마련한 ‘북한인권 및 국제 납치 행위 문제’ 청문회에 출석한 고명섭씨가 한국 정부에 대한 “허무함과 배신감을 느꼈다”, 조창호씨가 “한국정부가 더 이상 우리 자신을 창피스럽게
하지 말 것을 촉구한다”고 증언한 동기가 됐다. 또한 6.25전쟁 당시 아버지가 북으로 납치된 이미일 ‘6.25 전쟁 납북인사 가족협의회’ 대표가 납북자들의 귀환을 위해 활동하는 자신들이 “한국정부의 감시와 차별대우 대상이 되고 있다”고 폭로한 근원이 된 것이다.

이 장관과 한국정부는 이번 청문회를 마련한 제임스 리치 상원의원이 출석자들의 증언 청취에 앞서 개회사에서 “외국 국민, 특히 어린아이들을 납치하는 것은 문명사회의 기본을 위배하는 행위다. 이들 납치 사건들은 첫째로 국가적, 국제적, 정치적, 또는 전략적 문제가 아니라 인류애
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라고 발언한 내용을 깊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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