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죽음’으로 외친다

2006-04-2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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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섭(브루클린)

오늘, 우리들의 삶의 형태는 어제의 결과의 산물에서 비롯된다. 4월의 제단-4.3(1968년, 아! 제주도여). 솟을 오름에 노오란 유채꽃이 필 즈음, 미군정 치하에서의 경찰과 서북청년단 등의 폭력, 탄압, 납치, 살인 등에 대항에 봉기했던 제주도. 미군정은 즉각 무장군인들을 투입했다.

‘질곡의 세월, 서러운 이 땅에 태어난 죄 밖에 파아란 바닷바람 닮은 마음과 하늘빛 온몸에 이고 살던 유배의 땅, 제주도. 도민 약 27만 여명 가운데 약 10%에 해당하는 3만 여명의 사상자를 내며 죽음의 섬, 바다 위 공동묘지로 1년여 간을 ‘생과 사’의 공포로 떨어야만 했다. 4월~6월(1950년, 음모의 전쟁)바람도 숨죽여 갈 길을 멈추고 햇살조차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던 그 무렵, 38선을 베고 눕는 한이 있더라도 민족 간의 전쟁은 막아야 한다며 남북 ‘좌-우 합작’을 성사시키기 위해 38선을 오르락, 내리락 하신 김구 선생. 그 어떤 ‘이념과 사상’도 민족보다 앞설 수는 없다며 ‘민족단합과 화해’를 외친 김규식 선생. 이 분들의 한 맺힌 노력에
도 불구하고 한반도에 드리워진 ‘전쟁의 광풍’은 막지 못하였다.


제 2차 대전이 끝나고 냉전의 첫 희생물이 된 한반도. 형제-자매와 부모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고 이 세상에 오직 유일한 적은 서로 간에, 즉 동족이었다. 민족의 이성과 양심은 그 때 38선의 녹슨 철조망에 갈 갈이 찢겨져 한 많은 땅에 묻혔다.
4.19(1960년, 미완의 혁명) 일제 강점기, 식민지 조선 백성은 설움과 울분, 눈물과 고통, 핍박과 억압 속에서도 조국의 독립을 오매불망 그리며 처절한 투쟁을 벌이면서 맞이한 주어진 해방. 해방 후 일제 앞잡이들이 주요 관직을 다 꿰차고 앉아 온갖 부정, 부패, 독재, 공포정치, 도적질을 한도 끝도 없이 해쳐 먹던 그 때, 남원 지리산자락 밑에서 살다 어머니와 떨어져 마산에서 유학하던 김주열학생(당시 고등학생)의 시신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부두에 떠올랐다.

마산의 하늘과 땅이 하얗게 울고 초목이 치 떨리는 분노로 빨갛게 타 올랐다.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거대한 ‘통곡 소리’였다. 한 많은 역사, 굴욕과 치욕의 역사가 대를 이어 물려지는 것은 찢겨진 민중의 마음과 변질되고 왜곡된 ‘사회정의’와 민족정신’을 꿰매고 바로세우는 ‘역사청산’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까닭이다. ‘관용의 나라’ 프랑스도 나치점령기에 독일에 협력한 이들을 색출해 (99만 여명 투옥) ‘역사의 법정’에 세워 6.700여명은 ‘정의와 양심’의 이름으로 사형에 처했다. 폴란드는 ‘국가추모위원회’가 지금도 반민족 행위자들을 추적, 단죄하고 있다.

근영아! 너의 전사소식과 어머니를 찾는 안타까운 사연을 들은 것도, 4월의 한 자락이었다. 근영아! 나는 네가 부모님을 원망하고 유구한 껍데기 역사와 조국을 저주하며 한 겨레, 한 핏줄로 태어난 것에 침을 뱉지 말기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으로 4월13일에서 16일까지 여러분의 도움으로 추모제를 마련했다. 너무도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었다. 대 여섯살의 귀여운 아이부터 학생, 청.장년, 어머님들, 어르신들, 모두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명복을 빌어주었고 눈물로 내세의 ‘안녕과 평화로운 삶’을 기원하셨다.
MTA 운전기사님, 김지희님, 서승희 꽃집에서 영전에 꽃을 드렸다. 많은 미국인들이 잘못된 전쟁을 성토하며 미국을 대신해서 근영이와 유가족들에게 용서를 구한다고 했다. 기자인 듯한 중국 여성은 이 추모제를 인터넷에 올렸다면서 “한국 사람은 왜 가족도 아닌 개인과 단체가 합동으로 추모제를 올리느냐?” 답은 이랬다. 우리는 동족의 ‘영광과 기쁨’ ‘고통과 아픔’ ‘눈물과 슬픔’을 한 마음으로 함께 한다.

우리의 ‘뿌리’가 하나임을 확인하는 가슴 벅찬 자리였다.
근영아! 너는 ‘죽음’으로 겨레에게 외친다. 진정한 주권과 자주가 있고 변질되고 왜곡된 ‘민족정신’을 되찾는 내 조국, 내 겨레가 되어주기를. ‘불신과 분열’ ‘갈등과 대립’ ‘질시와 반목’ ‘위선과 편견’ ‘복종과 차별’은 한 많은 역사, 치욕의 역사 속에서 강요당한 ‘식민지 노예정신’이라고. 대를 이어 결코 물려 줘서는 안 된다고.

우리 모두 뜨거운 가슴으로 마음의 닫힌 ‘빗장의 문’을 활짝 열어 ‘신뢰와 단합’ ‘포용과 이해’ ‘사랑과 용서’ ‘진실과 양심’ ‘공존과 조화’로써 올 곧은 ‘민족정신’ ‘민주시민정신’을 회복하여 ‘불굴의 의지’와 드높은 기상’ ‘샘솟는 창의력’ ‘우수한 두뇌와 슬기‘ ‘모진 시련과 역경’마저 ‘인내와 희망’으로 승화시키는 저력, ‘홍익인간’ ‘인내천’사상의 민족적 민주, 자유, 평등, 박애 정신이 푸르른 강물처럼 흐르는 하나 된 ‘한인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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