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두 손 바닥이 마주 닿아야

2006-05-0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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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한국내 어느 학교에서 학생들의 문집을 보내왔다. 반가운 마음으로 문집 내용을 읽다가 전과 다른 세 가지를 찾았다. 첫째, 많은 학생들이 넓은 세상을 여행한 체험이 있다는 것, 둘째, 그들은 제법 어른스럽게 사회문제에 대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 셋째, 해외에서 귀국한 학생들
의 특수반이 생겼다는 것들을 알게 되었다.
6학년 학생의 글 중에 ‘젊은이의 국적 포기 이대로 좋은가?’의 제목이 눈에 띄었다. 그 내용 중에 ‘…약 2년간의 군 생활을 하기 싫어서 자신이 태어나서 20년을 살던 정든 조국을 버리는 것이다. …나는 우리 나라 젊은이들이 다시는 이런 일로 조국을 버리지 않기를 바라며 국적 포
기에 크게 반대한다.…’ 는 구절이 있다.

필자는 이 글을 읽으며 성격은 다르지만 80년대 귀국시 벌어졌던 어떤 일을 연상하였다. 한 모임에서 당시 날로 늘어나는 이민 문제가 자연스럽게 화제에 올랐다. ‘말하자면 개인의 이기주의라고 할 수 있지요’ ‘나는 이 나라에서 생애를 마치겠어요’ 등 듣기 거북한 분위기가 되
었다. ‘그런데 긴 안목으로 보면 이민이 이 나라에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 지금 사람들이 나라 밖으로 떠나는 것은 생명력의 팽창 현상이라고 보아요. 즉 물이 그릇에서 넘쳐 흐르는 것으로 볼 수 있어요. 그렇다고 물의 본질이 달라질 리가 없지요’ 필자의 말에 누구 한마디 대꾸가
없었다. 아마도 자기 변명으로 들렸을 것이다.


그 후에 오랜 시간이 흘렀다. 나라 안팎 사람들의 생각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얼마 전 WBC(World Baseball Classic)에서 4강에 올라 새로운 흥분의 도가니를 연출하였다. 이어서 이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 저력 분석에 바빴다. 여러 가지 이야기 중에 ‘국외 선수들의 조언과 협
력’이 큰 힘이 되었다는 지적이 있었다. 무게를 둘만한 말이다.
현재 한국인이 세계 155개 나라에서 600만명이 생활하고 있다는 통계는 실로 놀랍다. 세계 어디를 가든지 한국인을 만날 수 있다면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널리 퍼져 사는 한국인들은 고유의 문화권을 형성하면서 거주국에 또 하나의 색채를 가미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간절한 마음으로 한국내 발전에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세계는, 한 나라가 높은 담을 쌓고 자급자족하던 시기는 이미 지났다. 한국은 세계의 한국이고, 세계는 한국의 활동 무대이다. 이런 시기에 세계 어느 곳에나 이민들이라는 선발대가 있음은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한국이 어디서 어떤 일을 하든지 그들은 올바른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그들은 거주국에서 생활하면서 얻은 값진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 한국과 후속인들을 도울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요즈음 뉴욕주에 한국 간호사들이 5년간에 1만명이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 계약 당사자들이 ‘한국인들은 성실하고 책임감이 있어서’라는 평가는 어떻게 내려졌는가. 말할 것도 없이 생활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한인상’일 것이다. 이렇듯 이민들의 일상은 모든 면에서 한국인을 평가하는 모델이 되고 있다. 한국내의 미국 간호사 희망자들은 자녀의 조기유학이 가능하고 기러기 아빠를 만들지 않아도 되는 좋은 기회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간호사들은 영주권을 받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나라 안팎에서는 상호 협조하는 각 방면의 네트워크를 조성하고 활발하게 힘을 모으고 있다. 경제, 문화, 미술, 영화, 패션, 음식, 한복... 등 다각도의 한류가 세계로 스며들고 있다.
이러한 물결은 각처의 현지 한인과 나라 안의 협력 결과라고 본다. 여기에 넓게 퍼져 거주하는 이민 2세들이 사회의 좋은 일꾼으로 활약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손뼉을 치려면 두 손바닥이 마주쳐야 한다. 왜 나라 안팎은 서로 협력하면서 계속해서 손뼉을 쳐야 하는가. 손뼉을 치는 이유는 한민족의 문화를 알리며 세계 문화 발전에 기여하려는 것이다. 나라 밖에 문화권을 형성하는 일이 다른 나라를 침범하는 제국주의가 아니다. 반대로 거주국의 삶은 더 풍요롭게 하는 길이다. 이 일과 함께 나라 안의 일에 힘을 실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 이민온 사람들이다. 한때 비난의 대상이던 그릇 밖으로 넘쳐 흐른 물에는 그런 열정과 힘이 축적되었음을 보는 요즈음은 무척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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