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미국자유북한방송’에 기대한다

2006-04-1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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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한국에서 정치적 자유를 억압했던 유신독재시절에는 신문과TV 등 언론에 대한 통제가 심했다. 데모사태와 같은 반정부 기사는 아주 작게, 또는 아예 보도조차 하지 못하게 했다. 한국정부에 비판적인 외신기사도 보도할 수 없었다. 이런 사실이 국민에게 알려지면 비판적인 사고를 키워 반정부 활동이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독재를 할 때는 가장 좋은 방법이 국민의 눈과 귀를 막는 일이다. 국민들이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몰라야 하고 특히 외부 사정을 알지 못해야 독재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래야 국민들이 이것이 삶이려니 하고 질곡과 고통을 받아들이게된다. 만약 이런 삶이 지옥과 같다는 사실을 알게된다면 걷잡을 수 없는 반항이 일어나게 되어 결국 정권이 붕괴하고 말게 될 것이다.

과거에 공산주의 독재체제가 그들의 독재를 유지하는 방편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방법을 썼다. 일체의 언론을 국가가 독점하여 국민들에게는 일방적인 선전만 했고 외부세계의 사조와 생활상이 조금도 알려지지 않도록 철저하게 단속했다. 소련을 ‘철의 장막’, 중국은 ‘죽의 장막’이라고 할 만큼 공산국가들은 장막을 쳤다.
1990년대 이후 이 두 나라에서는 개혁개방정책에 따라 이 장막이 걷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도 군데군데 장막이 많이 남아있고 특히 중국은 신선한 바람만 들어오고 모기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모기장과같은 장막을 계속 치고 있다. 최근 인터넷 검색엔진인 구글에 대해 일부 정치적 용어의 검색을 금지시킨 것이 대표적 예이다. 이렇게 볼 때 외부의 사조와 정보의 유입을 막는 장막이 어느 정도 존재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개방 정도와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심하게 장막을 치고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린채 독재정치를 하고 있는 나라는 바로 북한이다. 지금처럼 세계가 하나의 생활권이 되어 인적 물적 교류가 자유로워지고 교통통신이 발달한 시대에 국내의 여행마저 통행증 없이는 불가능한 곳이 북한인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국영방송과 당 기관지를 통해 정권의 일방적 선전에 세뇌되어 21세기와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인권탄압을 자행하는 독재정치를 하고 있다.북한이 낙후된 경제를 발전시켜 국민의 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개방정책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 식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아마 북한의 통치자들이 개방의 필요성을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발전을 위해 개방정책을 취했다가는 정권 자체가 붕괴하는 사태
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에 개방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1990년대 초 필자가 중국의 관리들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이다. 당시는 북한의 나진 선봉지구의 개발이 화제가 되고 있던 때였다. 중국의 연변지역에서 생산된 물건을 북한의 청진항을 통해 수출하기 위해 청진에서 연변에 이르는 고속도로 건설문제를 논의했는데 북한측은 고속도로 주변에 주민들의 접근을 막도록 철책의 설치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그만큼 주민과 외부세계의 접촉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런 북한에 외부세계의 소식을 알리는 ‘미국 자유북한방송’이 20일 개국한다고 한다. 한국이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고만 애쓰고 있는 이 때 미국자유북한방송이 북한과 외부세계의 실상을 제대로 알려준다면 북한주민들에게는 복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방송은 2년 전 서울에서 시작된 인터넷 방송을 단파 라디오방송으로 전환시킨 것인데 한국정부가 송출 허가를 내주지 않아 미국법인으로 발족, 제3국을 통해 북한지역으로 전파를 보낸다고 한다. 사장과 아나운서들이 모두 탈북자들이고 미국의 디펜스 포럼 대표인 수잔 솔티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고 한다.
외부세계와 단절된 채 독재정치에서 신음하고 있는 북한주민들에게 북한의 실상과 세계의 소식을 전해주는 것은 질식상태에 갇힌 사람들에게 산소를 넣어주는 것만큼 필요한 일일 것이다. 아무튼 미국자유북한방송이 이러한 사명을 제대로 수행하여 북한 주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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