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부활절, 사랑과 용서

2006-04-1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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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부활절은 계산이 복잡하기 때문에 매년 날짜가 헷갈린다. 올해는 4월16일인데 이런 복잡함 때문인지 날짜가 잘못 기재된 달력도 생겨났다.
실제로 부활절 계산 방법은 너무나 복잡해 성직자들 가운데도 계산하는 방법을 모르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을 알았다. 알고 보니 부활절은 춘분이 지난 후 만월에 이어 첫 번째 오는 일요일이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역산해서 일요일을 뺀 40일을 사순절(Lent) 기간이라고 한다. 또한 그
것이 시작되는 첫 수요일을 재의 수요일이라 하고 부활절 직전 1주 동안을 고난주간으로 부른다. 이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사실 별로 없는 것 같다.

부활절을 맞아 우리가 생각해야 할 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핵심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하나님과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 가르침대로 인간이 살수만 있다면 인류사회에 무슨 큰 문제가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 사회를 보면 그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많
은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한인 커뮤니티에서도 서로 반목하고 시기하고 증오하고 그런 일들이 쉴 새 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더 큰 문제는 서로 싸우고 난 이후 화해하거나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오심의 뿌리가 깊어져 수년도 마다하고 대립하는 데에 있다. 그래서 사사건건 부딪치고 반대하고 방해해서 큰일에서도 화합을 이루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다. 한 가정이나 한 사회가 성공하기 위해
서는 무엇보다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안 되면 가정도 사회도 무너지게 되어 있다. 최근 한인가정에서 연달아 일어나는 일련의 충격적인 사고나 사건들은 다 그래서 일어나는 것이다. 사랑과 화해, 용서하는 마음이 조금만 있었더라도 아이들을 불에 태워 죽이고, 가족을 칼로 찔러죽이고, 총으로 쏴 죽이고 또 자신
의 목숨마저 끊는 그런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인간에게는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고 감싸고 상대방을 포용하는 마음과 그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영어에 “no cross no crown” 즉, ‘고난이 없이는 영광도 없다’ 라는 말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제자라고 불리는 사도 바울도 “나는 날마다 십자가에 달린다”라고 말했다. 그렇듯이 ‘사랑’과 ‘용서’란 자기 자신의 입장과 주장을 죽이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가능할 것이다. 가정에서 부부간에도 부모와 자녀 간에도 같이 살다보면 늘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큰 싸움은 보통 작은 일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 사소한 일이라도 서로 존중하고 양보하는 것이 중요한 사랑과 이해의 표현이 될 것이다. 직장에서나 단체생활에서도 내 얘기나 내 주장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주는 사람은 분명 존경받고 사랑을 받을 수가 있다.

나이가 들면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든가. 요즈음은 문득 지나간 일들이 생각나고 평소 내가 옳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갑자기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옛날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는 없기 때문에 혼자서 그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과의 화해이며 스스로에 대한 용서일 수도 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지나간 시간보다는 바로 ‘오늘’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부활절에는 내 가족들, 또 가까이 있는 친척이나 친구, 이웃들과의 관계를 점검해 봐야겠다. 혹시 누군가에게 오해를 하고 있거나 마음에 풀지 않은 미운 감정이 남아있는 사람들은 없는가. 누군가를 미워하면 결국 내 마음이 불편하다. 마음에 평화가 없고 괴로움만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나간 다음에 후회하는 것 보다 지금 당장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인들은 부활절 카드도 보낸다고 하는데 올해는 한인들도 부활절 카드를 몇 장씩 사서 사랑과 화해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묵은 빨래를 산뜻하게 빨아서 새 봄을 맞듯 우리도 이번 부활절을 우선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부터 사랑하고 용서하고 포용하는 마음으로 맞
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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