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아, ‘대한민국’, 정치만 잘해다오

2006-03-1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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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세계 최초로 열리고 있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대회에서 한국 야구가 잇달아 일을 내고 있다. 한국 야구보다 50년이나 앞섰다는 일본을 지난 5일 홈그라운드인 도쿄에서 깬 후 11일 캘리포니아의 애너하임에서 또 한번 깨주었다. 이어 14일에는 야구 종주국인 미국을 홈그라운드에서
여지없이 짓밟아 6전 전승으로 4강 진출을 따 놓았다. 여론조사에서는 한국팀이 우승할 것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다고 한다. 세계가 놀랐고 한국이 더 놀란 일이다. 한국이 야구 강국이라니, 참으로 기적과도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야구 뿐 아니라 모든 스포츠 분야에서 한국의 활약은 눈이 부실 지경이다. 올 들어만도 동계올림픽 등 각종 스포츠대회에서 한국선수들의 성적은 괄목할만 하다. 올림픽의 양궁 등 일부 종목과 월드컵 축구에서 한국의 위력은 이미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미국의 프로 골프계도 한국
선수들이 주름잡고 있고 얼마 전 미국의 수퍼보울에서 한국계인 하인스 워드가 MVP로 선정되어 큰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다.


어디 스포츠 뿐인가. 한국인들은 예술 분야에서도 탁월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음악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최근 몇년 사이 대중음악과 드라마 등 대중예술이 일으킨 한류 바람은 일본과 중국 등 아시아 국가를 휩쓸고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로 번지고 있
다.
한국인은 좁은 땅덩어리에 천연자원도 없고 자본도 없는 열악한 나라의 경제를 일으켜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특히 21세기를 이끌어가는 첨단산업과 생명공학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으니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에 사는 한인들도 짧은 이민역사
에 비해 참으로 성공적으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한국인들은 여러 분야에서 뛰어나게 잘 하고 있다. 한국인이 이렇게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다른 민족보다 우수한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머리가 좋고 재주가 많고 무엇보다도 경쟁심이 강해 이기기 위해서 근면하게 노력한다. 이런 장점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던 것은 역사를 통해 한민족이 중국에 눌려 지냈고, 개인들이 신분사회의 질곡에 얽매여 기를 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의 독립이 존중되는
세계가 되고 민주주의와 개인의 자유가 허용되는 세상이 되자 한국인의 장점이 빛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이다. 한국인의 장점은 또한 단점이 되기도 한다. 좋은 머리와 재주를 제대로 쓰지 않고 잘못 쓰면 사기를 치고 가짜를 만들어낸다. 경쟁심이 궤도를 벗어나서 이기심만 있게 되면 공동생활이나 동업 등으로 발전하는 협동정신이 좀먹게 된다. 그리
고 나아가서는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다. 각종 불법과 탈법,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그 단점이 대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분야가 정치이다. 정치인들은 정치에 정성을 쏟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남용하여 이기심을 추구하는 일에 정신이 팔려있다. 그래서 부정, 부패가 만연한다. 또 권력을 추구하기 위해 잔머리를 굴리게 되니 권모술수와 중상모략이 난무한다. 역사적으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아온 한국에서 지배층은 그렇게 백성들을 수탈해 왔다. 그 버릇이 정치에는 아직도 남아있다는 말이다.

어떤 개인이나 조직이나 사회가 큰 업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본연의 위치에서 충실하게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예술가는 예술에 미쳐서 정진할 때 대가로 성장할 수 있다. 만약 돈을 버는데 혈안이 된다면 결코 예술의 경지에는 이를 수 없을 것이다. 장사꾼이라고 하여 돈을 벌
기 위해 소비자를 속인다면 사업이 망하게 된다. 좋은 제품, 좋은 서비스로 열심히 봉사하면 저절로 부자가 될 수 있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이기심으로 잔머리를 굴리니 정치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정치는 꼴이 아니고 국가와 국민만 불행해진다.

한국의 모든 분야가 세계인이 놀랄 정도로 잘 하고 있다. 그런데 정치만은 세계인이 놀랄 정도로 못하고 있다. 한국인들의 장점이 이렇게 많은데 왜 단점만 가진 사람들이 정치를 농단한단 말인가. 잘 나가는 나라의 앞길을 가로막는 정치를 더 이상 그냥 두어서는 안된다. 제발 정치만
잘 해다오. 그러면 한국은 세계의 일등국가가 될 수 있다. 이 원수같은 정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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