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 영주권에 대한 나의 단상

2006-02-21 (화)
크게 작게
올해는 영주권 문호가 얼마나 열리고 또 진전될지 궁금하고도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 글을 쓴다.

조국을 떠나 이민을 결행하는 것이 그 자체로 쉽지 않지만 그렇게 찾아가 살고자 하는 남의 나라에서 영주할 수 있는 권리를 얻는 일은 더욱 간단한 일이 아니다.

특히 미국이 이민자의 나라이고 가장 많은 이민자를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맹방이라지만 미국에 들어와서 적법하게 살 수 있는 영주권을 받아내는 과정은 실로 기약없는 기다림의 시간과 함께 만만치 않은 경비와 때로는 보상받을 수 없는 어려운 일을 겪게도 되는 ‘속앓이 여정’이다.


그러나 구한말 우리나라가 처해진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에 휩쓸려 혹자는 터지고 굶어죽지 않으려고, 혹자는 대의를 품고 조국을 떠나 반세기 이상 흩어져 살던 내 동족들이 이제사 그리던 어머니의 나라가 세계에서 12번째 부자가 되었다고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찾아드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실정법이 그들을 어떻게 대접하는가. 생각해 보면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미국이 우리를 선뜻 맞아들이지 않는 것에 대해 야속해 하고 비판할 명분이 전혀 없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어쨌거나 미국은 함께 잘 먹고 잘 살아보자고 세계 도처에서 밀려들어오는 수백만의 이민자들을 감당하기 위하여 ‘자국의 현실적 이해관계 내지는 정치적인 환경’에 따라 이민자 처리 방책에 대한 녹녹치 않은 논쟁을 하며 수정과 혁신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적체된 이민건과 이민국의 구태의연한 행정력, 그리고 미국의 내외적인 많은 상황 변화로 인하여 새로이 밀려드는 이민서류의 처리는 더욱 뒤로 밀려질 수 밖에 없는 악순환을 거듭한다.

이런 연고로 미국이민 신청의 처리 결과는 언제까지 기다려야 되는지, 더구나 신청내용에 어떤 하자가 있어 보완할 기회 조차 적시에 부여받지 못한다면 그만 서류가 제쳐져서 어쩌면 백설공주처럼 한 백년쯤 미국 이민국 접수처에서 잠을 자게 될 지도 모르는게 현실이다.

미국의 영주권 취득이 이렇게 간단하지 않으니까 바로 이 ‘막연하고도 막막한 영주권 취득 수단을 놓고 마치 밀수꾼처럼 이 특수한 상품을 주선하는 사악한 무리들이 도처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그 성장과정이 매우 불규칙한 일련의 과정을 갖는 이 영주권이라는 열매’의 특성을 알고 이 농사의 성패를 밝혀내기가 간단치 않다는 사실을 이용하여 ‘이 땅에 건너와서 대부분 아니꼽고 더럽고 치사하고 힘든 일을 통하여 벌어내는 기막힌 돈’을 ‘여간해서는 아무 것도 수확할 수 없는 영주권 농장’에 투자를 유도하여 놓고 사정없이 ‘기대감과 세월과 돈’을 함께 갈취하고 있는 것이다.

영주권 협잡이 진실로 나쁜 것은 직접 연루된 개인 뿐 아니라 대개는 그의 온가족의 생존을 위한 절대적인 신분에 연결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일을 감행하는 것은 그 사악함의 정도가 정녕 가볍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행위를 하는 무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소위 이민 브로커들 뿐만 아니라 놀랍게도 정의를 구현해야 할 소임을 저버린 변호사도 끼어 있다.

또 우리를 영원히 좋은 곳으로 인도할 소명을 받았다는 사람과 함께 활동하는 사람도 있고, 그리고 우리 귀에 익은 국가적 공인을 받은 무슨 무슨 해외이주공사도 있었다는 사실에 그만 믿음 자체를 의심치 아니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일들이 원천적으로 가능한 것은 본인의 이민신청과 관련하여 스스로 이민법 전문변호사 또는 이민전문 봉사기관의 협조를 얻어 첫째, 신청자 본인과 스폰서 자체에 이민법적으로 어떤 결함이 없는지 둘째, 진실로 적법하고 하자없이 초기 서류를 작성, 제출하는지 셋째, 진전되어가는 단계를 확인하면서 적시에 정확한 조치가 수행되는지를 철저히 확인하여야 하는데 실패한 많은 사람들의 경우, ‘누구누구도 그렇게 했다’는 그럴싸한 말만 믿고 돈을 요구하는 브로커들이나 값싼 노동의 댓가를 지불하는 자칭 스폰서들을 무턱대고 믿어버리고 스스로 족쇄를 차기 때문이다.

아무튼 모국에서 가난과 좌절을 딛고 아직껏 이 나라가 잘 살 수 있는 기회의 땅이라고 믿고 큰 물을 건너고 산을 넘어서 숨가쁘게 찾아든 사람들이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영주권을 미끼로 더욱 참담한 어려움에 꿰어지는 작금의 현실을 의식하며 그 무슨 힘으로 이를 깨부수랴 답답한 마음 그지없다.

필자도 이름을 대면 많은 사람이 알 만큼 알려졌던 자칭 ‘만능 변호사’에게 일을 추진시킨 결과로 실로 6년근 인삼재배 보다 많은 투자와 시간을 날려버리고 가까스로 어떤 양심적인 스폰서와 어느 이민봉사실의 협조로 끝가지에 열린 영주 열매를 간신히 수확하게 되었던 지루한 농사 경험이 있다.

조국을 떠나 낯선 벌판에서 새로이 시작하는 삶의 터전에 고생을 배가시키는 이런 일을 하는 파렴치들은 과연 자신들의 삶을 어떻게 다듬는지 가족과 친구들에게는 어떠한 인륜과 사랑을 지키는지 그 가증스러울 모습을 잠시 그려보면서 우러나오는 인간적인 불쌍한 심정을 억제할 수 없다.

이 일 호 (시인)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