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스템의 유무

2005-10-1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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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59년 미국에 유학왔을 때 귀국시 한국에 꼭 가지고 가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시스템’이었다. 그 때 처음으로 시스템에 대한 눈을 뜨게 되었다.학생들이 화장실에서 나오거나, 식당에 들어갈 때 학생들의 행로에는 거기를 거치면서 손을 씻고, 말리고 갈 수 있는 시설이 있었다. 그 당시 이 일을 돕는 종이타올이 있다는 것은 하나의 놀라움이었다.식당에서는 육류·채소류·빵 종류·음료수 종류·후식 종류 별로 모아놓은 앞을 지나면서 각 부류에서 한 가지씩 각자의 쟁반 위에 올려 놓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식사가 끝나면 포크·숟가락·남은 음식 넣는 곳·빈 그릇 놓는 곳·쟁반 놓는 곳 등이 정해 있어서 각자의 손으로 설거지를 돕게 되어 있었다.

도서실에서는 필요한 책을 찾아 읽거나 대출하는 방법 등의 체계가 서 있어서 모두 그것을 지키고 있었다. 현재는 한국 내에서도 앞의 여러가지를 실행하고 있어서 별로 놀라울 것이 없지만 50년대 끝무렵, 교직을 떠나 미국에 머물던 때이어서 한국의 학교 생활과 비교가 되었다.‘시스템’이란 어떤 목적을 위한 질서있는 조직·체계·계통·방법·순서·규칙 등 여러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일을 추진하는 질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의 생활 지도를 위한 시스템이 잘 짜여져 있다면 그들에게 큰 소리를 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2세들에게 한국문화를 전승하여서 그들의 정체성 확립에 도움을 주겠다는 염원은 가정이나 학교나 거의 같다고 본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첫째는 체계가 ‘있고·없고’라고 하겠다. 가정교육은 형편에 따라 긴 시간·짧은 시간이 따로 없이 이루어지기 쉽다. 교재의 선택 역시 전문가의 선택과는 거리가 있다. 부정기적으로 때에 따라, 교재에 따라 행하는 언어교육은 그 효과를 올리기 힘들다. 학교 교육의 줄기는 교육 과정에 있다. 학교에서는 교육 과정에 따라 교육의 체계를 세우고 있다.둘째, 전문가와 비 전문가가 행하는 교육의 영역이 다르다. 전문가는 그 방면의 학식과 체험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부모가 자녀를 평가할 때 뜨거운 애정이 바탕이라면, 교사가 학생을 평가할 때는 이지적인 애정일 수 있다. 부모가 자녀 하나만을 단독으로 관찰할 때, 교사는 그 학생을 그룹 안에서 볼 수 있다. 부모가 자녀의 현재에 불만을 가질 때, 교사는 그 학생의 미래를 보며 의견을 교환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할 때 부모와 전문가가 맡고 있는 일의 영역을 알 수 있다. 가정 교육은 부모의 몫이고 학교 교육은 전문가의 영역이다.

셋째, 교육은 정기적으로 시행해야 효과를 올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여섯 시간을 배당받았을 때, 하루 여섯 시간 공부하는 것보다, 하루 한 시간씩 엿새 공부하는 편이 능률적이다. 이 방법을 실천하는 곳이 학교이다. 하루 세끼를 제 시간에 취하는 것이 기초 건강 유지 방법이고, 영양소를 골고루 취하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학교의 하루가 이어진다.넷째,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다른 열매이다. 내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이 내가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내가 한국말을 잘 하고, 한글을 잘 읽고 쓰고, 글짓기에 뛰어난 능력이 있으니까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가르치는 능력’을 따로 길러야 한다. 부모들이 가정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열성은 대단하지만, 가르치는 방법에 가일층의 연구가 필요하다.

다섯째, 한국문화 교육은 광범위한 것이다. 한국어는 한국문화의 중심이다. 즉 속알맹이다. 그러나 한국문화라고 하면 그 범위가 굉장히 넓다. 그 모든 것을 가정에서 가르쳐 주기에는 힘이 든다. 학교에서는 될 수 있는대로 범위를 넓혀서 골고루 체험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짤 수 있다.지금까지의 장황한 설명을 간추리면,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의 큰 차이는 시스템의 유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영역이 다르지만 서로 협력 없이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것이 한국문화 교육임을 깨닫게 한다. 40 여년 전에 학교와 사회의 시스템을 부러워하던 미국에서 카트리나를 겪으면서 시스템의 행방을 찾는 현실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시스템이 있더라도 바르게 작동하고 있는 지 수시로 체크해야 하는 의무가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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