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 운명을 바꿔놓은 맥아더 장군

2005-10-1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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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정순(뉴욕장로교회 장로)

6.25 한국동란 직전, 필자는 황해도 검찰청의 호출장을 받고 변호사 개업지인 수안에서 평양을 거쳐 해주 소재 황해도 검찰청 특무부장 검사실로 끌려갔다. 취조실 책상 위에는 ‘죄명 반동죄, 구속’이라는 붉은글씨의 표시를 보고 눈을 슬그머니 감고 묵상기도 하였다. “죄가 없는
나에게 반동죄라니 주님, 너무하십니다. 금광 철조망 밖에서 퇴근 후 가족과 함께 흘러내리는 골짜기 물의 토사를 긁어모아 여과하여 금싸라기를 모은 것이 죄가 됩니까? 그러한 광부들의 행위가 무죄이기에 무죄 주장 변론을 한 것이 죄가 됩니까? 변호인 제도를 둔 이상 피고인을
위해 변론하는 것은 당연하지, 어째서 범죄가 됩니까”기도가 끝나자 그 부장검사의 얼굴을 그 때서야 뚜렷이 쳐다볼 수 있었다.

뜻밖에도 그는 일본 동경 와세다대학을 나온 같은 법대 출신이요, 일본군 학도병 동기요, 과거 나의 부하이던 재판소 서기과장이었다. 그는 천정을 쳐다보며 담배를 피우다가 나를 직시하면서 “선배님, 죄송합니다. 상부의 지시이니 부득이 호출을 하였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뿐인데 제 의견을 들어주시겠습니까?” 하고 묻는다.
“말씀해 보시요” 하고 대답했더니 변호사 사퇴서를 내시겠다면 불기소 처분을 상부에 건의해 보겠습니다” 하고 관용을 베풀듯이 제의한다.
무법천지인 북한에서 그 이상 바랄 것이 없어 미련없이 사퇴서를 쓰고 풀려나왔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풀려난지 얼마 안가서 도 군대 소집장이 나와 필자는 산중으로 피신하기 시작하여 만 두달만에 맥아더장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과 북진으로 고향에서 미군의
진격을 환영하였고, 전가족을 데리고 피난을 결행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다시 조국을 떠나 40년간 세계 최강 부유국가의 시민으로 행복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


만일 맥아더장군의 인천상륙작전 감행이 없었던들 필자는 물론 우리 일가족은 북에서 집단 학살당했을 것이다.내가 군 입대를 거부하고 산중으로 도피한 사이 우리집 이웃에 살던 비당원 즉, 공산당에 가입
하지 않은 무소속 동민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공산당에 의해 전가족이 학살 당하였다. 물론 우리 가족도 무소속이었으니 살아남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29세 나이의 필자도 누구보다도 먼저 학살당했을 것이다.
맥아더장군의 인천상륙작전과 북진작전 덕분에 필자가 그 후 55년을 더 생존하게 되었고, 한국동란 당시 자녀 셋이었는데 현재 일곱에다 자부 넷, 사위 셋과 19명의 손자녀를 두고 있으니 우리를 살려준 은인이요, 대한민국의 은인이다.그의 기발한 상륙작전이 없었다면 김일성이 남한을 송두리채 점령하였을 것이고,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지구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노무현 정권에게 다시 4,000여만명의 이름을 빌려 부탁한다. 불과 50명 내외의 국가보안법 위반 전과자 폭도들의 만행을 사전에 봉쇄하여 전원 국보법 위반죄로 검거, 투옥하여 미국 조야의 원성을 당하지 말라. 경찰력으로 동상 경비만 하겠다는 소극적인 자세를 버려라. 정치인은 1년 앞을 내다봐서는 안된다. 50년, 100년 앞을 내다보는 식견이 필요하다.‘자주국방’이니 ‘대등외교’니 ‘경수로 제공공 조종역할을 하겠다’느니 적성국가이던 러시아, 중국, 북한에 자주 드나들어 얻은 외교적 이득이 무엇인가? 공연히 세계 유일의 우방국가이던 미국 보야의 감정을 사서 일본에는 팔겠다는 무인 전투기를 노무현 정권은 판매 거절을 당하지 않았는가? 언제 주한미군이 철수할지도 모를 일임을 예견 못하는가? 만일 주한미군이 한국에서 철수한다면 그 날로 김정일은 남한으로 전격 진격해 들어올 것을 짐작해야 할 것이다. 역사적 반역자가 되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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