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죄를 뒤집어쓰는 사람들

2005-10-14 (금)
크게 작게
박중돈(법정통역관)

한인 한 사람이 술을 입에 대지도 않았으면서 음주운전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 한인들의 나쁜 습성으로 자초한 불행한 에피소드이다.이 사람이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집을 향해 운전하고 있었는데 바짝 뒤따라 오는 차가 음주운전을 단속하는 잠복경찰이란 것도 알아차렸지만 자기는 술을 마시지 않았으므로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다. 얼마간의 주행 끝에 이 경찰은 번쩍거리는 불을 켜고 정차를 명했다. 경찰은 운전면허증을 조
사한 다음에는 알콜농도를 검사하는 기구를 꺼내서 불라고 요구했다. 이 사람은 자기가 아무런 위반을 한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저런 검문을 하는 경찰의 태도가 몹시 못마땅해서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런 검문을 하느냐며 몹시 불손한 언성으로 항의했다.

경찰의 반응은 간단했다. 검사기구를 가리키며 이것을 불 생각이 없느냐고 되물었다. 화가 난 이 사람은 즉시 큰 소리로 ‘No’ 하고 대답하고 거칠게 항의했다. 그러자 경찰은 그 자리에서 이 사람을 체포하고 알콜검사 거절로 인한 음주운전 혐의와 체포 항거죄 혐의로 입건하고 말았다.
뉴욕주의 법은 음주운전의 의심이 가는 사람이 알콜 테스트를 거절하면 자동적으로 음주운전의 유죄가 되도록 되어 있다. 이 사람이 변호사를 선임해서 열심히 싸웠으나 결국에는 테스트 거절로 인한 음주운전 혐의는 벗지 못했다. 술 한잔 마시지도 않았으면서 말이다.


경찰의 심문에 순순히 대응하지 못한 만용이 빚은 불행한 일이다. 이런 식으로 경찰의 검문에 쓸데없이 대들다가 억울하게 수갑을 찬 사람의 경우가 의외로 많다.홀아비로 살고 있는 중년의 남자가 셋방 주인과의 말다툼 끝에 이 집 주인여자의 남자친구에게 매를 얻어맞고 경찰을 불러 신고를 했는데 출동한 경찰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은 다음 오히려 이 사람을 체포하고 폭행과 학대 혐의로 입건해 버렸다. 물론 이 사람의 속상함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분이 치민 이 사람은 변호사에게까지 자초지종을 설명하지 못하고 “내가 왜 여기 와야 하느냐?”고 펄펄 뛰면서 자기가 자기의 분한 사정을 판사에게 직접 말하겠다고 덤볐다.

법원의 절차상 이 사람이 입건되는 그 자리에서 판사에게 자기의 입장을 설명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므로 변호사가 이를 만류했는데 이 사람은 변호사가 성의가 없어 그렇다고 불평하면서 다른 변호사를 선임하겠다고 큰 소리쳤다.그 다음 재판이 정해진 날, 이 사람은 변호사를 대동하지 않았고 자기는 변호사를 선임할 의사가 없고 변호사 없이 단독으로 재판을 진행하겠다고 선언해서 판사의 허락을 받았다.드디어 고집대로 직접 설명할 기회가 되었다. 정작 재판이 열리던 날, 이 사람이 제일 먼저 한 말은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습니다”였다.

말하자면 자기는 아무런 일을 저지르지 않았는데 어떻게 되어 여기까지 입건되어 왔는지 억울하다고 설명하고 “정작 체포되어 재판을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인데 내가 왜 여기에 체포되어 왔는가?”라고 하려던 참이었다.미국인의 사고방식으로, 또한 재판과정에서 이런 식의 말을 하면 그 말에 함축된 뜻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표현 그대로 받아들여 마치 정신병자 취급을 하게 된다.

이런 식이니 재판이 제대로 진행될 리가 없었다. 이래저래 재판을 다시 연기하고 하다 보니 거의 일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말았다. 제풀에 지쳐버린 이 사람은 결국 검사가 제시하는 소란을 일으킨 풍기문란 혐의를 인정하고 재판을 끝마쳤다. 이 사람이 차근차근 처음부터 변호사와 사건 경위를 설명했더라면 이런 억울한 혐의는 벗을 수 있었을 것이었으나 억울한 생각만 하고 성급히 덤비다다 덤터기를 쓴 경우이다.법원에서 일하다 보면 한인들은 우선 변호사나 판사의 말을 차분히 듣지 않는 나쁜 습성이 있다. 그리고 경찰이나 기타 사법기관의 절차에서 자기가 정당하다고 느끼면 터무니없이 덤비는 버릇이 있다. 이런 습성 때문에 그야말로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 쓰는 한인들을 만나는 것이 내가 겪는 가장 가슴 아픈 일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