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한국은 탈북자 적극 대처해야

2005-10-1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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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현지 시간으로 지난 11일 오전 9시 중국 칭따오에 있는 한국학교 이화국제학교에 북한의 탈북여성 8명이 공사중인 학교 담을 넘어 교내로 진입했다. 교장실로 바로 들어간 이들은 교장의 바지 가랭이를 잡고 “한국으로 가겠으니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이들 중 몇 사람은 애원하다가 기절까지 했다고 한다. 칭따오 한국총영사관에서 영사가 달려와서 이들에게 점심식사를 먹인 후 오후 1시20분 총영사관으로 데려갔다.

이보다 하루 전에 중국은 탈북자 7명을 북한에 강제 송환한 사실을 공개했다. 이 탈북자들은 한달 전 옌타이 한국국제학교에 진입하여 망명을 신청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국제학교는 국제법상 치외법권지역은 아니지만 접근이 쉽고 외국학교라는 점에서 탈북자들의 진입사건이 자주 발생한다. 지난번 탈북자가 강제 북송되었기 때문에 중국이 이번 탈북자를 어떻게 처리할 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중국이 탈북자를 강제북송하는 이유는 탈북자가 난민이 아니라 불법 경제이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치 미국이 멕시코 국경에서 밀입국자를 체포하여 멕시코로 되돌려 보내는 것과 같은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탈북자를 색출하기 위하여 공안력을 총동원하고 국제적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탈북자를 강제 북송하는 것은 북한의 탈북자 방지정책에 협조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으로 넘어오는 탈북자는 중국이 말하는 것처럼 단순한 불법경제이민은 아니다. 이들이 먹고 살 수가 없어서 중국에 왔다면 동기는 불법경제이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체포되어 북한에 송환될 경우 북한에서 반역자로 몰리게 되고 북한 형법에 따라 7년 이상의 노동교화형과 심지어는 전재산 몰수, 사형까지 받게 된다. 그러므로 송환되면 죽게되는 이들이 난민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수많은 탈북자를 체포하여 북송하고 있는 중국은 북한과 다름없는 인권 탄압국인 것이다.이와 같은 탈북자 문제에 대해 국제사회의 여론이 날로 고조되고 있다. 이달 들어 유엔인권위원회에 제출된 북한 인권상황 보고서는 탈북자를 난민으로 보고 북한 인접국들에 대해 난민 대우를 촉구하고 있다. 또 미국의 의회 정부 합동 중국 인권감시기구인 중국위원회는 11일 연례 보고서에서 “탈북자 강제 북송은 중국도 가입한 난민지위협정 등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의 탈북자 강제 북송에 반대하는 미국의 일부 의원들과 인권단체는 중국이 탈북자 강제북송을 계속할 경우, 무역제재를 부과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6월 한국의 국가 인권위원회가 남북한 동시 수교국의 주한외교사절을 초청하여 마련한 간담회에서도 한국과 중국의 탈북자 정책을 비판하는 말이 쏟아져 나왔다. 네덜란드 대사는 한국이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곧 동의를 의미한다면서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독일 대사는 탈북자 강제송환에 대해 인권위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반문하기도 했다고 한다.그 뿐 아니라 한국의 국내와 해외에서 많은 한인과 외국인 인권단체들이 탈북자의 난민 인정과 망명 허용을 위한 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23일 서울지방 변호사회는 “이제는 북한 인권 말해야 한다”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하여 북한 인권에 침묵하는 것은 분단을 고착시키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북한 인권단체의 운동에 동참키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북한 인권에 앞장서야 할 대한민국의 인권정부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고 따라서 탈북자 문제에도 단호히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세상에서 가장 못난 인간은 밖에 나가서는 꼼짝도 못하면서 집안에서만 큰 소리를 치는 인간이다. 정부도 마찬가지로 밖으로는 할 말을 못하면서 국민들에게만 군림하는 정부가 가장 못난 정부라고 말할 수 있다. 정치권력과 정부가 대외적으로 날카로운 발톱을 세우면서도 민주화를 통해 국민에게는 더욱 낮아진 모습을 보여준 것이 서구의 역사이다. 미국은 한 사람의 시민을 적국의 수중에서 빼내기 위해 전 외교력을 동원하기도 한다. 그것이 미국의 자랑이고 미국인의 긍지가 된다.

한국이 북한 인권과 탈북자 문제에 대처하는 자세는 어디까지나 인권이나 국민을 보호하는 차원이 아니라 북한과 중국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는데만 급급하는 인상이 역력하다. 어디 그 뿐인가. 북한에 간첩의 시신을 보내주고 미전향 장기수를 보내겠다고 하면서 납북자와 국군 포로는 데려오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국내에서만 대연정이니 국민대통합 연석회의니 하고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으니 참으로 못난 정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이제 탈북자 문제는 국제사회에서 점점 더 큰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한국정부가 이 문제를 외면할 수는 없다. 더 이상 나라꼴이 한심해지고 탈북자들이 억울하게 희생되는 일이 없도록 한국정부가 정신차려야 한다. 이번에 한국학교에 진입한 탈북자의 강제송환부터 막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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