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말싸움과 말장난

2005-10-1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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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찬(취재2부 차장)

요즘은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누군가와 의견이 부딪치는 것조차 귀찮지만, 예전에는 논쟁을 무척 즐겼다.별 것도 아닌 사안을 두고 서로 옳다고 자기 주장을 펴다보면 감정싸움으로 변질되는 일이 흔
해 한동안 서로 얼굴 쳐다보는 것조차 싫은 적도 있다.
또 논쟁을 벌이다보면 서로간의 생각들이 첨예하게 드러나고, 성격까지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방에 따라 대응 방식을 찾게 되고, 상대방의 약점을 공략해가는 방식도 서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 상처를 받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논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사고의 폭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넓어진다기보다는 스스로의 부족한 점을 다른 사람과의 논쟁을 통해 느낄 수 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A라는 사실이 정답인 것으로 오랫동안 알고 있었는데 어느 한순간 그것이 틀렸다고 지적하면 당사자는 격렬히 반발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자신이 정확히 알고 있다는 믿음이 깨지는 일은 다반사다. 신문사에서 처음 들은 얘기 중 하나가 ‘너 자신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이 정답이
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었다.또다른 장점은 머릿속에 막연히 생각하던 것을 말을 하면서 정리를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생각이 말로 표현되면서 그 생각 자체의 옳고 그름까지도 다시 한번 판단하게 되고, 체계적으로 정리를 할 수 있게 돕는다. 머리보다 말이 빠른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대책이 없다. 논쟁을 할 때 가장 말하기 싫은 부류는 말꼬리를 잡는 사람들이다. 흔히 말하듯이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쳐다보는’ 식이다. 당신 나이가 몇이냐는 식으로 말꼬리를 잡으면 더 이상 말이 필요없다.가장 짜증나는 것은 논쟁의 주제를 다른 논점으로 돌려버리는 것이다. 범동포적으로 북한을 돕자는 명제에는 동의하면서, 누가 하느냐에 따라, 또는 이해관계에 따라, 갑자기 인권이나 핵문제로 얘기를 돌려버리면 갑갑해진다.

가장 얄미운 사람은 중립적인 척하면서 이쪽도 옳고 저쪽도 옳다는 식의 양시양비론자다. 과거 80년대 학생운동이 한창일때 전경과 학생이 충돌하면, 양쪽 모두 잘못이라는 식으로 몰아간다. 세상일이라는 것이 무 자르듯이 옳고 그름을 딱 자를 수는 없지만, 중요한 논점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노력없이 무조건 싸우지말라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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