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창밖을 바라보는 한인들

2005-10-1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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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한 동네 몇 블록 안 되는 곳에 같은 종목의 한인업소가 거의 10개나 들어서 있음을 보게 된다. 이들은 요즘 같은 불경기에 모두들 한정된 손님을 서로 기다리며 창문 밖만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손님은 가뭄에 콩 나듯 하나 둘씩 밖에 오지 않는다. 이것이 요사이 한인 소기업 비즈니스의 현실이다. 그러니 폐업하는 가게가 자꾸만 생겨날 수밖에. 이 중에서도 한인들이 많이 밀집해 있는 곳의 경우 폐업하는 가게 수가 제일 많은 업종은 식당이라고 한다. 왜 그럴까? 식당은 기본적으로 손님이 있으나 없으나 재료 구입을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구입해놓은 재료는 일정하므로 손님이 없는 날도 저녁이면 무조건 다 내버려야 하는 문제점이 있다. 자본금이 넉넉지 않다 보면 어떻게든 쓸려고 양념을 진하게 한다든지 해서 음식을 만들어 팔면 자연 음식 맛이 안 좋아 손님이 알게 된다. 이런 일을 몇 번 반복하다보면 그 집은 자연 문을 닫게 되어 있다. 이런 가게는 제대로 된 시장조사와 아무런 계획 없이 가게를 연 것이 문제이다.

비즈니스 성공은 시장조사를 어느 정도 철저히 했느냐 그것이 핵심이다. 맥도날드나 버거킹,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 같은 미국의 유명 체인점들은 어느 지역에 가게를 개점할라 치면 벌써 수개월 전부터 그 동네에 들어가서 정확한 시장 조사를 벌인다. 예를 들어 요즈음 백인동네에 후라이드 치킨 가게가 안 들어가는 추세도 바로 그들의 철저한 시장조사에 의한 것이다. 비만이 문제가 되고 보니 요사이는 기름기가 없는 햄버거나 샌드위치, 야채 등을 주로 한 메뉴로 발빠르게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한인 경우는 식당 열고 손님이 무얼 원하는지도 모르고 장사해 고객들의 발길을 떨어뜨린다. 손님의 요구나 기호, 입맛에 맞는 메뉴개발을 하든지 하지 않고 업소가 정한 메뉴를 끝까지 고수하고 있으니 가게가 문을 열고 닫고 하는 일이 자연 속출할 수밖에 없다.


잘 되는 업소와 잘 안 되는 업소의 메뉴를 비교해 보면 종목은 같더라도 재료를 어떤 것을 얼마만큼 썼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결과는 바로 음식 맛과 신선도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손님이 조금 있는 식당이라도 재료를 계속 신선한 것으로 구입해서 만들지 못할 경우 그
나마 손님이 줄어들어 결국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비즈니스란 덮어놓고 남 된다고 간판 걸고 문만 열면 되는 것이 아니다. 장사가 제대로 되려면
뭐니뭐니해도 필수요건이 자본과 노동력이다. 이것이 준비되지 않으면 그 장사는 제대로 운영되기가 어렵다. 특히 식당 경우 자본이 있는 사람이라도 주인이 음식을 알고 직접 다 만들 줄 아는 노동력이 있어야 한다.

유니온 스트릿이나 노던에 가면 한국 사람들이 운영하는 식당이나 가게들이 많다. 이곳을 지나다 보면 1년새 같은 종목의 가게만도 몇 개씩 열렸다 닫혔다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은 알고 보면 안되기 때문에 자꾸 팔고 사고 하다보니 생겨나는 현상이다. 내막인즉, 같은 종목의 비즈니스 경우 어느 가게서 일하던 종업원이 나와 문을 열곤 하는데 그러다 보니 경쟁이 너무 심해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닫곤 하는 것이다. 이런 집은 어쩌다 가보면 손님을 맞기 위해 눈 코 뜰 새 없이 분주한 것이 아니라 주인이 창 밖을 내다보고 어둠만 바라보고 있다. 창 밖의 어둠은 곧 그 장사의 어둠이다. 이런 가게의 경우 벌써 여러 가지 정황으로 ‘힘들겠구나’ ‘아 이 가게도 얼마 못 가겠구나’ 하는 감이 오게 된다. 이런 것을 보면 이제는 제발 새로 생기는 것도 안 바라고, 우선 있는 곳만이라도 잘 되게 해달라고 빌고 싶은 심정이다.

롱아일랜드나 커네티컷 같은 외곽지에 가보면 주말마다 열리는 프리마켓이 있다. 여기서 파는 물건은 거의 캐캐 묵은 옛날 고리짝 쇠붙이나 의자 및 가구 등이다. 이런 고물들을 갖다 쭉 늘어놓고 파는 이들을 보면 정말 놀라운 교훈을 배운다. 하다못해 이런 고물 하나를 놓고도 이들은 미국의 역사를 훤히 궤 뚫고 있다. 언뜻 보면 고물장수이지만 그들은 앉으면 찌부러질 고물 의자 하나 갖고도 설명하면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해박한 고고학자다. 그런 정신을 가져야 하다못해 청바지 장사든 무얼 하더라도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성공하는 사람은 남들과 뭐가 달라도 다르기 때문에 성공하는 것이다. 무작정 간판만 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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