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이는 문제되지 않는다

2005-10-1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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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정(KCS 장년복지센터 실장)

평등과 기회의 나라 미국에서 인종차별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 ‘연령차별(Age Discrimination)’이라고 한다. 물론 그 정도에 대해서는 우리 한국인들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우리는 지금도 사람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 보다는 외모와 나이에 기준하는 경향이 있다.미국내에서 분명히 법으로 규제하고 있는 사항 중에 고용주가 질문해서는 안되는 질문이 바로 ‘나이’이다. 하지만 여러 매체를 통해 고용인을 구하는 구인난을 보고 전화를 걸 때마다 받는 질문은 ‘나이’이다.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할 따름인데 말이다.

L씨는 현재 73세이다. 미국에 이민와 열심히 영어공부를 해서 미국사람과 대화를 나누는데에도 문제가 없을 만큼 노력했다. 장년 사회봉사 고용 프로그램에서 직업훈련생으로 있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영어공부를 했다.
작년 말, 필자가 미국 의료기관으로부터 병원 통역자를 구한다는 전화를 받고 제일 먼저 떠올린 사람은 L씨였다. 그 분이라면 해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두번의 인터뷰에 건강검진까지, 어떻게 보면 까다롭고 긴 과정을 거쳐 L씨는 최종적으로 입사 통지를 받았다.정말이지 고용을 하면서 나이에 제한을 두지 않고 L씨를 뽑아준 그 미국기관에 감사했고, 그 어려운 인터뷰 과정을 어렵게 극복해준 L씨에게 한없이 감사할 따름이었다.더 중요한 것은, L씨가 그 통역 직업에 굉장히 욕심을 냈었다는 것이다. 다른 동년배들이 “이 나이에... 더 벌어서 뭐하나...” 하는 동안 L씨는 나이를 더 먹어 몸이 아파 누워서 일을 더 못할 때까지는 열심히 일을 해보고 싶다고 욕심을 냈었다.

통역이라는 것이 L씨에게는 새로운 직업이기에 더 긴장이 된다고 하였다. 그런 L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이왕 하는 일이 병원을 다니면서 환자와 함께 통역을 돕는 일이니 홈케어 보조원 교육을 받으면 더 효과적으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뭔가 새로운 것이 도전하고 쟁취해 나가는 L씨에게 나이는 그저 숫자일 뿐이다. 그리고 필자의 눈에 L씨는 현재 42살이다.사회의 관습과 통념을 바꾸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 개개인의 노력이 모여 그것이 거대한 힘으로 발휘되어야 한다. 우리 한국인들의 통념 속에 깊게 자리잡고 있는 ‘나이’에 대한 편견 역시 우리 스스로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고용과정에서 나이를 중요한 관건으로 생각하는 고용주나 일을 하는데 있어서 숫자에 불과한 나이에 집착하는 고용인이나 함께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나이는 그저 숫자이다. 그렇다면 오늘 당신은 남들에게 몇 살로 비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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