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잘 죽는 법

2005-10-0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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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지난주 한국에서는 「잘 죽는법」이라는 이색적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는데 성황을 이루었다는 기사가 신문에 보도됐다. 한국 죽음학회라는 특이한 단체가 연세대 신학관에서 개최한 이 세미나에는 여대생에서 70대 노인에 이르는 200여명의 청중이 참석했는데 세미나가 끝난 후 참석자
들이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졌다고 말한 것을 보면 종교적인 차원의 세미나였던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에 대해 관심이 많다. 젊었을 때는 자신이 영원히 살 것 같은 생각을 하여 죽음이 자신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죽음이 닥아오고 있음을 불현듯 느낄 때가 많아진다. 죽음은 사람에게 가장 큰 공포의 대상이다. 죽지만 않을 수 있다면
건강이나 경제나 무슨 걱정도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겪는 모든 어려움이 직접 또는 간접으로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걱정으로 인해 인생을 피곤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천하를 손에 넣은 진시황은 불로장생을 위해 불로초를 구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여러 차례 실패 끝에 스스로 불로초를 구하려고 대장정에 나섰다가 여독으로 과로하여 50세의 나이에 객지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다는 숙명 앞에서 죽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잘 죽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사람의 오복 가운데 하나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서경의 홍범편에 나오는 사람의 오복은 오래 살고(수) 물질적으로 넉넉하고(부)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하고(강녕)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여 덕을 쌓는 일(유호덕), 그리고 자기 집에서 편안히 죽는 것(고종명)이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긴 병치레를 하지 않고 자손들이 모인 가운데서 편안히 숨을 거두면 잘 죽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서 이렇게 잘 죽기는 쉽지 않다. 대형 교통사고나 화재사고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면서 사고 피해자가 많아지고 있다. 곳곳에서 범죄가 발생하여 범죄 희생자도 많다. 신문지면을 장식하는 끔찍한 사건 사고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닐 것이다. 사람들의 이동이 심한 현대시대에 객지가 아닌 집안에서 편안히 죽는다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사람의 수명이 길어지고 성인병이 일반화한 시대에 치매나 긴 병치레를 하지 않고 죽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역사상 위대한 족적을 남긴 위인들은 결코 잘 죽은 사람들이 아니다. 인류를 구원의 길로 이끈 예수는 죄인으로 정죄되어 십자가에 못박혀서 최후를 마쳤다. 아테네의 수많은 사람을 감화시켰고 후세 사람들에게 위대한 스승으로 기억되는 소크라테스도 국법을 어긴 죄인으로 독배를 마시고 숨을 거두었다. 조국을 위기에서 구하여 우리 민족의 위대한 영웅으로 추앙받는 이순신 장군은 전장에서 적병의 총탄을 맞아 이 세상을 떠났다. 그밖에 역사상 위업을 남겼거나 한 시대를 움직였던 사람들이 피살되거나 처형된 경우는 너무도 많다. 또 전쟁에 나가 이름없이 죽어간 사람들도 수없이 많다. 모두가 잘 죽은 것과는 거리가 먼 경우이다.

사람이 죽을 때 잘 죽는 것을 바란다고 하더라도 뜻하지 않은 사고, 불행하게 다가온 질병 등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 때문에 뜻대로 죽을 수는 없다. 오히려 살아있는 동안 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잘 죽지 못할 확률이 더욱 크다.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 전세계를 누
비고 다니는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할 확률이 큰 것과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잘 죽는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잘 살고 죽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의 오복 가운데서 네 가지 복, 즉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몸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하고 남을 돕고 봉사하여 덕을 쌓으면서 오래 오래 살다가 죽으면 이것이 곧 잘 죽는 것, 즉 「고종명」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잘 죽는 법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잘 사는 법」을 알아서 잘 살다가 죽는 것이 잘 죽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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