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글날 559년에 부쳐

2005-10-06 (목)
크게 작게
정권수(목사/소설가)

한글은 우리의 자랑, 세계 인류의 문화유산이다.지난 5월 6일, 한국일보에서 일제의 한국어 말살정책에 항거해 옥고를 치른 한글학자 정인승(1897~1986)박사의 업적이 2세 외종손 이미한(17.메릴랜드 거주)양의 에세이를 통해 미 연방의회 기록에 영원히 보존된다는 것을 읽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내가 알고 있는 정인승 선생은, 호는 건재, 전북 장수에서 태어나 연희 전문 문과를 졸업하여 조선어학회서 사전 편찬을 맡았다.그는 1942년 조선어학회 수난으로 광복 때까지 옥고를 치른 후, 전북대학교 총장을 거쳐 한글학회 이사와 학술회원으로 평생을 한글에 받쳐 학자로 살다가 간 분이다.특히 1910년은 일제에 강점되어 광복하기까지 35년간은 악몽과 같은 세월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명색이 주권 국가이면서도 남의 나라 궁중에 들어와 명성왕후를 살해한 일본의 잔악 무도한 횡포는 어디 짐작이라도 했겠는가!그 당시 일제가 노리는 것은 역사와 언어의 말살인데, 정인승 선생은 서울 한복판에서 내 나라
의 언어를 찾고 문화를 되찾을 ‘조선어 사전’을 편찬하겠다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활동을 하였던 것이다.저들이 천치 바보가 아닌 이상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던 것이 당연하다.나라를 걱정하고 겨레의 앞날을 열어보려는 우국지사는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정인승 선생을 비롯하여 이극로, 이중화, 정태진 등은 물론이요, 환산 이윤재 선생은 함흥 형무소에서 옥사를 했던 것이다.


최근에 나는 서울의 한글학회로부터 ‘한글 새 소식’지를 받아 읽으면서 그 당시의 일을 단편적이나마 생각하게 하였다. 그것은 한글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우수한가를 자랑하지 않을 수 없다.우리에게 한글이 없었다면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렇게도 세종이라는 임금이 그리 고마울 수가 없다.
한글은 우리 민족의 문자만으로 생각하기는 너무 아까운 세계 인류의 문화 유산이자 문화의 기초 근원인 동시에 그것을 반영하는 거울이기도 하다.

몇해 전, 나는 알라바마의 애번 대학교(Auburn University)의 도서관을 방문했다가 1944년 발행의 ‘조선어학 사전’을 발견했다. 일제의 창씨개명에 의한 한국인 학자들의 이름이 일본이름으로 하여 대동출판사에서 발행된 ‘조선어학 사전’이었지만 나에게는 매우 흐뭇하고 값진 수확이었다.
책장을 넘기니 첫머리에 1948년에 CHANG S HAHN란 기증자의 이름이 써 있는데, 그 분이 누구일까 하고 지금도 궁금해 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무한한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하고 있다.나의 경우, 외국에서 태어난 두 자녀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하는 동안 교회의 한글학교와 연세대 어학당 및 펜(PEN)대학 한국어과에서 한글을 배우고 읽고 쓰게 하여 부족하지만 유색인종으로서 이 땅에서 살아가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했다.

이런 관점에서 내가 70년대 스페인에 체류 시절, 자택으로 초청한 신상철 대사는 당시 5.16 민족 중흥회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도움으로 ‘새 우리말 큰 사전’(삼성출판사)을 편찬 발행한 신기철, 신용철 선생에 대한 얘기를 한 기억이 난다.그는 체신부장관 시절, 박 대통령에게 건의하여 조상의 숨결과 민족 혼이 들어있는 ‘새 우리말 큰 사전’의 편찬 간행을 보게 함으로써 우리의 국력과 민족 문화가 그만큼 발전하였고 또 그만큼 힘차게 뻗어가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매우 흐뭇하고 반가운 일이라는 것을 말했다.

30년이 넘은 세월이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할 것 없이, 한글사전 하나를 만들기 위하여 관련 학자들이 온 힘을 기울여 그 기초작업으로 개인에 따라 지역에 따라 달리 쓰던 한글의 맞춤법을 통일해야 하고 각 지방의 사투리 중에서 표준이 될 말을 사정하여야 했다.오늘 한글날 599돌을 맞는 우리는 자라나는 2세들에게 한글을 사랑하는 정신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계승하여 세계 여러 나라의 사람들로 하여금 한글을 사용하고 말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