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행복에 가까이 서 있는 사람들

2005-10-0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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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옥(전 고교 역사교사)

인생의 즐거운 시기를 5,60대였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으나 그 때가 또한 삶의 질을 높이고 여가 선용을 위한 기획의 준비 시기임을 말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나이가 지천명에 이른 K씨와 J씨는 일하기를 즐거워 하고 삶을 사랑하는 것 말고도 유사점이 많다. 힘들게 일해 얻어지는 재화에 대한 믿음은 곧 그들의 종교이다. 아내들이 대학 동창생이고 자식 또한 훌륭히 키운 것도 닮았다. 그들은 성공을 위해 태어나고 또 일하기 위해 태어난 가정적 남자로서 흥분하면 뛰어오르는 혈압 수치도 같게 나타난다.

인생 여정의 마지막 단계를 안전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일찍부터 앞만 보고 뛴 사람들이란 표현이 더 어울린다.그러나 그 준비과정은 너무 달랐다. 인간이 물질을 주무르는 것이지 물질이 인간을 그리할 수 없다고 믿는 J씨는 안락한 삶을 위해 약속받을 정도의 물질 소유를 곧 최대의 행복으로 받아들인다. 그의 요즈음 삶은 교향곡 4악장을 연주하는 것 같아서 힘차면서도 축소지향적이다.보다 일손이 적게 드는 작은 집이면서도 둘이서 좀 더 가까이 할 수 있는 내부의 편리함을 선택하고, 큰 것에 대신해 작으나 예술적 향내가 품어나는 가구를 찾으며 사고의 범위를 줄이며 보다 적게 소유하고 덜 먹고 덜 욕심내며 더불어 살아가려 한다. 그 잉여 정력과 시간을 젊어서 해보고 싶었던 열망을 성취시키기 위한 방법 습득에 활용하고 있다.


J씨의 그런 계획이 그런대로 실현되어 가는 지난 여름에 K씨 가족에게는 큰 불행이 갑자기 찾아들었다. 그는 삶을 확대시킴으로써 즐거운 삶의 귀결점을 찾으려 했고 영주의 주택같은 대저택에서 살아보는 것은 그 해답이었다. 흥분과 과로가 겹치는 가운데 요원해 보였던 꿈의 집은 완성되었고 그로부터 달포도 지나지 않은 무덥던 여름날, 분주한 일에서 집으로 돌아와 욕탕에 들어 샤워를 한 때는 일과 삶을 사랑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었다.일에 대한 신앙적 열정으로 삶을 사랑한 그들 신은 피조물의 모범생으로 일찌기 선발해간 것이다. 성공을 위해 일 중독자가 되어 열심히 살아온 자신의 신앙에 대한 순교자가 된 것이다.

나이들어 갖는 넓은 집은 꿈의 집이 될 수 있으나 가족들의 대화를 단절시키는 ‘고독의 궁전’이 될 수도 있다. 조만간 도마 위에 오르게 될 어항 속의 물고기가 설치고 돌아다니는 일은 부질없는 일이다. 인생 여행의 나이테가 많아지면 불필요한 것을 정리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축소된 삶을 사는 것이 젊은이로 새롭게 태어나는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다.자신의 한계를 알고 여가 선용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욕망의 노예가 되어 분주하게 우왕좌왕하는 사람 보다 좀 더 행복한 삶에 가깝게 서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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