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화장술에 능한 사람

2005-09-2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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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화장은 오래 하면 할수록 본래의 피부가 점점 더 상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도산 안창호 선생은 “제일 좋은 화장은 한 듯 하기도 하고, 안한 듯 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세상살이에 접목하게 되면 화장술이 능할 경우, 즉 화장을 너무 많이 하게 되면 사업이 상하는 수가 있다. 다시 말하면 남에게 보일려고만 한다면 속에서 썩고 있다는 걸 자기 스스로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주위를 보면 조금 뭐 한다 하는 사람이 상처가 나 있고 비즈니스에 구멍이 나 있는 것을 볼 때가 많다. 그러나 겨우 먹고살기 위해서 작게 하는 사람은 모든 걸 다 드러내놓고 하니까 햇볕에 그을려 단단하기도 하고, 맞을 바람, 안 맞을 바람 다 맞아가면서 하니까 탄탄하고 화장술에 의한 상처도 없다. 그래서 작은 일에 열심히 종사한 사람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쉽게 난관을 극복한다. 그러나 화장술에 능한 사람을 보면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대부분 자신이 하고 있는 비즈니스를 계속해서 끌고 나갈 능력이 없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에게 불가피한 것은 이를 가리기 위해 없어도 있는 척, 능력있고 힘있는 척 화장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거짓말도 해야 되고 남의 등도 쳐야 되고 허세도 부려야 되는 입장이다. 우리가 소위 말하는 이런 사회악을 제거하자면 이런 화장품만 다 없애면 그만이다.


지금까지 한인사회 사회악은 이런 잘못이나 악행들을 선도해야 할 지도자나 기관들이 전자에서 나열한 화장품을 너무 좋아한 데서 출발한다. 일상에서도 남에게 화려하게 보이는 직업보다도 조금 힘든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때론 훨씬 더 소박하고 건전한 삶을 살고 있음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사회를 건강하게 이끌어나가는 사람은 바로 화장을 하지 않는 이런 흙과 같은 사람이다. 흙은 모든 생명을 생산해주는 원천이다. 소멸하면 다 받아주는 것이 흙이다. 바로 이름 없이 열심히 일하는 한인들이다. 한인사회는 이런 흙과 같은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건전해지는 것이다. 아무 것도 없으면서 겉치레만 하는 사람들이 허세를 부리고, 화장품을 들고 다니며 크레용을 칠하듯 그 때 그 때 남에게 보여주려고 색깔을 칠해 가며 을 더럽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사회는 이를 바로 잡을 기관이 없는 것이 문제다. 구속력이 있는 법적 제도나 기관이 없기 때문에 개선은커녕, 고인 물이 점점 흙탕물이 되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점 더 썩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바꾸겠다고 아무리 우리 사회 속에서 떠들고 난리 쳐도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누구하나 지적을 받는다 치더라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는다. 떠들라면 떠들라 식이다. 아니 오히려 잘못을 변명하고 합리화하기 위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문제를 덮기 위해 목소리를 높인다. 이민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한인사회가 앞으로 백년대계를 바라보고 이런 것은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고 본다.

건전하고 밝은 우리 사회를 위해 이제는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나면 개선시키고자 하는 고발정신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미국 속에 바른 한인사회 건설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조처라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한인사회는 적당히 눈 가리고 아옹해도 다 덮고 넘어가는 사회라고 잘못 인식을 하게 된다. 잘잘못을 가리지 않고 자꾸 ‘옹야, 옹야’ 하며 봐주다 보면 덩어리는 점점 더 커지게 마련이다. 혹자는 한인사회에서 일어나는 불미스러운 일을 미국 법에 호소, 고발하게 되면 한인사회의 수치라며 ‘누워서 침 뱉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제 한인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이런 류의 시대에 떨어진, 퇴보적인 생각은 좀 안 했으면 싶다.

차라리 가만있는 것이 더 발전적이라고 생각한다. 잘못된 진단으로 문제를 오히려 더 감싸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에게서 가장 무서운 건 바로 오진이다. 수술을 잘못했다,
약을 잘못 처방했다가 아닌 것이다. 검은머리 가지고 이민 와서 흰머리 된 이 마당에 아직도 구태의연한 생각으로 사물을 볼 것인가. 이제는 이민연륜에 맞게 무엇이 문제인지 제대로 판단하고 진단하고 처방을 내려야 할 것인지. 냉철하게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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