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숙한 역사의식을 가진 사람들

2005-09-2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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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현(목사/칼럼니스트)

“남한에 불순분자들이 활개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로군”
평소에 진보적 정치를 지지하던 친구마저도 맥아더장군의 동상을 철거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본국 소식을 듣고 얼굴을 찌푸렸다.

최근에 4,500명 가량의 집단이 인천 자유공원에 모여 맥아더장군의 동상을 철거하려는 시도를 했다고 한다. 이를 1,000여명의 시민들과 해병동지회 회원들이 몸싸움으로 저지했다는 소식이다. 맥아더 장군 동상을 부수려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불순분자’이거나 ‘잘못된 역사의식’을 가진 사람들이거나 ‘조금은 모자란’ 사람들임에 틀림 없다. 불순분자란 공산주의 간첩이거나 현정부와 미국간에 틈을 조장하려는 자들을 말한다. 간첩들은 오늘의 자유민주주의 남한을 지키는데 공헌한 맥아더 장군이 눈에 가시일 것이고, 또 다른 측면으로는 사회를 분열시키는 돌발사태를 조장 시도한다.


본국정부는 외교부 공식성명을 통해서 ‘이러한 행위는 한미동맹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고 우리 사회의 성숙한 역사의식에도 반하는 행동’이라며 ‘정부는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철거되거나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발표했다하니 그나마 다행이다.‘성숙한 역사의식’에 반하여 ‘미숙한 역사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정말 골치아픈 사람들이다. 항상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잘 모르면서 뛰어다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맥아더 장군이 과연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 인명사전만 찾아 보았어도 그런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글라스 맥아더(Dagulas MacArthur 1880~1964) 장군의 연대기를 간단히 기술하면, 1903년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 수석졸업, 25년 육군참모총장, 30년 대장 승진, 37년애 퇴역한다. 그러나 41년 일본과 전운이 감돌자 미 극동군사령관으로 복귀해서 필리핀에 부임한다. 이어 42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연합군 남서태평양 방면 사령관으로 대 일본작전 지휘, 44년 오성장군인 원수로 승진, 45년 일본 무조건 항복후 일본점령군 최고사령관-군인-총독으로 동경
에 주둔한다. 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UN군 최고사령관으로 부임해서 그 해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지휘, 그 해 11월 미 해병대 두만강까지 진격… 부인할 수 없이 우리는 20세기의 한 위대한 영웅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삼성 장군의 아들로 미 아칸소주 병영에서 태어나 평생을 직업군인으로 산 맥아더장군은 우리 한국과는 아주 특별한 인연을 가졌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중 태평양 전선에서 연합군사령관으로 치열한 전투를 지휘해서 일본을 제압하고 항복을 받아냈다.일제 36년의 강점을 수치라고 생각한다면 그 굴레를 벗겨준 맥아더는 우리의 영웅으로 당연히 존경받아야 하지 않는가? 맥아더장군은 2차대전 중에 유럽과 연합군을 지휘하여 독일군과 싸운
아이젠하워 장군, 북아프리카에서 독일의 롬멜과 싸운 패튼 장군과 더불어 우리 시대의 영웅이다.은원을 구분하지 못하고 잘못된 역사관으로 설쳐대는 사람들은 나라 팔아먹은 친일파 보다도 어리석은 사람들 아닌가? 또 6.25전쟁에서 북한이 이겼다면 어떤 결과가 발생했을까? 크메르 루지가 자행한 학살 보다 더 큰 학살이 발생하지 않았고, 한반도가 오늘날 아시아에서 가장 후진국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맥아더 장군이 직접 지휘한 인천상륙작전은 ‘블루 하트’라는 암호명으로 시작됐다. 한미합동작전으로 수행된 이 작전 성공으로 전세는 역전되어서 9월 26일 서울을 탈환하고 북진을 시작했다. 낙동강 전선에 집결되어 길어진 인민군의 보급로를 끊는 전격 작전으로 퇴로를 잃은 적군 10만을 생포해서 거제도에 수용하게 됐던 것이다.이것은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더불어 세계 전생사에 남는 명 작전으로 평가된다. ‘맥아더가 없었다면 오늘날 남한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과장된 말일까? 맥아더 장군은 일본제국주의와 공산주의라는 20세기의 최악의 도전에서 오늘날 남한의 자유민주주의를 보존케 한 영웅이다. 역사란 고쳐 쓸 수 없는 엄정한 사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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