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작은 변화, 그리고 큰 기쁨

2005-09-2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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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경(뉴저지)

누구나 가고 싶은 나라, 미국에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훌륭한 아들로 키우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미국에 첫 발을 내딛은지 어언 4년, 한국에선 생각도 못한 힘든 생활과 언어와 문화의 장벽으로 어느덧 내 마음과 몸은 지치고 무겁게만 느껴지고 나도 모르게 아들과 함께 하
는 시간은 눈에 띄게 줄어져 갔다.

거기다 작년부터 일찌기 사춘기에 접어든 다니엘은 그동안 나름대로의 스트레스와 불만을 나에게 짜증으로 쏟아 냈고 태권도 2단의 실력으로 학교에서도 곧잘 싸움을 하고, 입에서는 거침없이 욕이 튀어나와 사랑과 칭찬을 했던 내 입술은 잔소리와 신경질이 날로 늘어나고 조용하고 평화롭던 집안은 시끄럽고 큰소리가 나는 날이 많아졌다.엄마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좋아하고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항상 얘기하던 다니엘이 비밀이 많아지고 ‘안돼’ ‘하지마’와 ‘왜 안돼?’로 가득찬 우리의 대화는 서로가 짜증이 나고 우리의 즐거운 시간은 점점 줄어들어 갔다. 반면 혼자 밤 늦게 아이들과 셀폰으로 무언가 즐겁게 얘기하고 가끔씩 친구들과 밖에서 늦게까지 놀다 즐겁게 돌아오는 아들이 왠지 나를 씁쓸하고 허전하게 했다.


아들과 나의 직선적이고 강한 성격은 점점 우리 사이의 벽을 만들고 밖에서는 별 문제 없고 성실하고 평범한 학생이었지만 집에서는 크고 작은 문제로 나를 힘들게 하는 때가 많아졌다.그런 어느 날, 우연히 광야 프로그램을 접하게 되어 우리 다니엘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등록하게 되었다.원래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을 꺼려하는 다니엘을 캠프에 남겨두고 오는 내 발걸음은 정말 이 아이가 무언가 변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 반, 아니 제발 변해주기만을 바라는 간절한 희망이 반이었다.일주일 후, 꼬질꼬질 땀냄새를 풍기면서 돌아온 다니엘은 무언가 모르게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대부분의 외아들이 그런 것처럼 집안에서는 항상 편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과 좋은 것은 반드시 가져야 하는 왕자병인 다니엘이 달라졌다. 우선 항상 엄마에게만은 반말이었는데 꼬박꼬박 존대말을 사용하고, 매사에 ‘thank you’란 말을 쓰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셀
폰이 캠프기간 중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끊고 다시 사주지 않았는데도 보통같으면 다시 해달라고 난리법석이었을 텐데 순순히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별 얘기가 없다. 더군다나 평상시 친구들과도 곧잘 싸우던 아이가 한순간의 실수로 평생을 감옥에 살고있는 한 흑인 죄수의 얘기를 듣고 몇 녀석을 좀 혼내주어야 하는데 참고 용서해 주기로 했다는 말을 하는 다니엘을 보면서 얼마나 값진 일주일이었는가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또한 교회에서는 예배시간에 집중을 하게 되고 엄마가 무어라 하면 무조건 ‘싫어’ ‘왜?’를 남발하던 아이가 일단은 엄마 말을 들으려고 하는 자세가 남들이 보기에는 모르겠지만 항상 아들에게 안테나를 집중시키고 있는 엄마만이 감지할 수 있는 이 작은 변화가 얼마나 나에게 큰 기쁨과 힘이 되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180도로 완전히 변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다니엘은 속칭 ‘똥바지’를 입고 등교하고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농구 하고 밤 늦게까지 브레이크 댄스 연습으로 비지땀을 흘리고 자기 방 또한 지저분하기 그지 없다. 그러나 예전의 다니엘이 아니듯이 나 또한 이런 사춘기 아들을 더욱 이해하고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이런 작은 변화들을 하루 하루 쌓아 나간다면 나와 아들은 어려운 사춘기를 성숙하게 잘 넘기고 정말 바람직한 내일의 꿈을 이루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광야 프로그램의 모든 선생님들과 관계자들에게 정말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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