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달은 기우는데

2005-09-2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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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요즈음 밤하늘을 보면 보름달이 훤하다. 옛 부터 우리는 보름달 하면 아주 좋은 쪽으로 바라봤다. 보름달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신라시대 유리왕 때 달을 노래한 싯귀가 있다. 이 노래는 보름달 아래 온 마을 사람들이 서로 좋아 어우러지는 그런 분위기를 왕이 보고 너무 좋아
라 읊은 것이다. 당시 유리왕은 가을 추수가 끝난 후 동쪽과 서쪽에 사는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해서 어느 쪽이 더 타작을 많이 했나 겨루는 대회를 벌였다. 그 때 진 쪽은 이긴 쪽에 온갖 음식을 다 만들어 그들에게 큰상을 차려 바치고 서로 어우러져 춤추고 노래하며 즐거워했다고 한다. 그만큼 그 시대에는 보름달 하면 상당히 풍요롭고 태평성대로 보이는 그런 분위기를 연상하게 만들었고 또 사람들도 그런 시각으로 보름달을 쳐다보았다. 이걸 바탕으로 부른 시가 바로 도설가와 희소곡인데 이 시의 배경은 그만큼 그 당시 분위기가 여유가 있고 살기가 좋았다는 데 있다.

보름달이란 그만큼 우리한테 태평성대를 말하는 것이고,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고 환하게 해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시대가 변하면서 보름달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이나 생각, 시각도 한층 변화되고 있다. 시대마다 기쁜 노래나 시만 있는 것이 아니고 어느 시대에는 수심
가가 우리나라 도처에 깔려 있었다. 이는 그 시대가 그만큼 먹고살기 힘들고 환경도 힘들고 몸과 마음도 힘든 시절이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의 달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 것일까? 하나의 상처이다. 그래서 서양의 비평가들은 ‘현대는 병들었다, 그럼으로 해서 현대인은 병들었고 그래서 절망한다’고 말한다. 이런 절망하는 사람들이 사는 현대에는 보름달이 우리에게 쓰라림을 주고 있다. 그런데 이 쓰라림은
실은 달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서 우리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바라보는 보름달이 해마다 찾아오지만 우리가 이런 쓰라린 감정을 가지고 받은 그 보름달 빛, 내년에는 그렇지 않아야 될 텐데... 이제는 모든 게 발전해서 현대화됐다고는 하지만 이 현대가 어떻게 해서 그 옛날 신라시대 유리왕 때만도 못하는가.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보름달
도 물론 사람마다 다르기는 하겠지만 오늘 내가 바라보는 이 보름달이 정말 절망스럽고, 비애스럽고 슬퍼 보이지는 않는지...

그렇다면 우리는 빨리 이런 시각에서 깨어나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마음만이라도 하늘에 뜬 이 둥근 만월같이 여유롭고 따뜻하고 환한 마음을 가지고 생활해야 되겠다. 무엇이든 여유가 있어야 도덕도 생기고 윤리도 생기고 사회 질서도 생기는 법이다.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미국도
태풍 한번 불어닥치니까 꼼짝 못하고 질서가 무너지고 난리였다. 이때 사회를 복구시킬 재정이나 지원이 없을 경우 그 지역에 질서라는 것은 없다. 이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 정부는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피해지역에 구호품을 막 쏟아 붓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미국을 정신교육 때문에 온 것이 아니다. 아이들을 더 잘 교육시키고 더 잘 살기 위함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관심도 갖지 않아 거리로 내몰고 가게는 경쟁자가 많아 안 된다고 푸념만 하고 있다. 그러면서 아이가 속 썩이고 가게에 손님이 없는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곤 한다. 무엇이든 작전을 다시 세워 문제점이 무엇인가 따져보고 어느 것이 옳은가 생각해서 새로운 방향을 찾아가는 그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가정에서도 네가 옳은가, 내가 옳은가 싸움만 하지 말고 어느 것이 옳은지 가족간에 다시 한번 머리를 맞대고 원인을 끄집어내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옛날 식으로 가만히 앉아서 가게만 열고, 아이들에게 밥만 먹여주고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곤란하다. 더구나 이민온 우리들 대부분이 한국에서는 전혀 생각지도 않은 직업들을 가지고 경험 없는 일들을 하는데 하다 보니 속상해서 나오는 것은 한탄이요, 한숨뿐인데 이것도 잘못이다. ‘내가 왜 이런 걸 해’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데..’ 하며 비탄만 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수긍하고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 가게가 잘 되고, 아이들이나 부부 사이가 좋아지면 내년에 오는 보름달이 더 환하고 둥글어서 마음을 한층 더 풍요롭고 따뜻하게 해줄 것이다. 그렇지 않고 계속해서 어렵다고만 한다면 내년에도 쓰라리고 기우는 보름달은 어김없이 또 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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